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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잊지못할 2002 이야기 (김병지 드리블 사건+히딩크와 협회의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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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설의 윙병지   

 

히딩크의 첫번째 목표는 한국을

16강에 진출시키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전문적인

훈련도 중요하지만

 

강팀을 상대로 시합을 해보고

큰 대회마다 참가하여

 

선수들이 경험을 쌓는 것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한국 감독직 수락 조건으로 선수들을

아무때나 차출해 훈련할 수 있게하고

 

히딩크

"선수들을 아무때나 불러

훈련할 수 있게해야합니다"

 

가삼현

"Ok"

 

강팀을 상대로 경기할 수 있는

막대한 예산을 요구한 것도 이때문이었다.

 

히딩크

"강팀을 상대로 경기할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합니다"

 

가삼현

"Ok"

 

그렇게 히딩크는 감독으로 부임후

1월 24일, 첫번째 대회로

 

홍콩에서 열리는 현 아시안

챌린지 컵에 해당되는

 

칼스버그 컵에 출전하기로

결정하였다.

 

칼스버그 컵 노르웨이 VS 한국.

 

당시 노르웨이는 피파 랭킹

14위의  뷱유럽 축구 강국으로

 

큰 키와 엄청난 피지컬을

자랑하는 강팀이었다.

노르웨이 성인 평균 키는 182cm 이다

 

상대가 슛을 해도 닿지 않을 공이

골키퍼 손에 닿아버리고

 

몸싸움도 안밀리면서 특히

코너킥 상황에서 

 

상대 골 진영 앞에서 버티면서 큰 키로

헤딩을 넣을듯한 압박이 대단했다.

 

그런 노르웨이와 치열한 접전 끝에

한국은 2:3으로 경기를 마무리하며

 

아쉽게 패배하였다.

역전골 당하는 한국 (파랑 유니폼)

 

한국은 홍명보 선수를 주축으로 

4-4-2 수비 전술을 활용하였지만

 

좌우로 늘어선 한국 수비진은

마치 역할 분담이 안된듯

 

노르웨이가 치고 들어올 때마다

우왕좌왕하였으며

치고 들어오는 노르웨이 (빨강 유니폼)

 

노르웨이가 순간적으로 수비의

빈공간을 침투하고 들어오면

 

어김없이 침투한 공격수를 놓치며

실점으로 이어졌다.

 

히딩크 감독 역시 이 경기를 보면서

많은 고민을 하였지만

 

승리가 중요한 것이 아닌 

선수들의 역량과

 

한국팀의 전술적 약점을 진단하기위한

하나의 경기로 유심히 지켜보았다.

 

히딩크

"각자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보려고

많은 선수를 기용했다"

 

다음 상대는 FIFA 랭킹 10위

파라과이를 상대해야했다.

 

2001년 1월 27일

한국 VS 파라과이.

 

한국 선수들의 미드필드 장악과

빠른 공세에 막혀

 

전반전은 양팀 모두 득점을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전반전 추가시간 1분,

 

갑자기 한국 대표팀

골키퍼 김병지가

 

패널티 박스로 들어온 공을 

킥을 하는 척하더니

노란 유니폼 김병지

 

그대로 드리블하여 공을

몰고 나왔다.

 

히딩크

"?!!"

 

골키퍼의 드리블이라는 상황에

선수들, 관중들 모두 당황하였고

 

특히 감독으로 부임한지 며칠 안된

히딩크가 보기엔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히딩크

"Oh My God"

 

심지어 김병지가 골을 몰고 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 3초후,

 

파라과이 선수에게 공을 빼앗기며

이대로 파라과이 선수들이 달려

 

텅 빈 한국 골대를 노릴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이 벌어졌다.

공을 빼앗기고 복귀하는 김병지 (노란 유니폼)

 

다행히 김병지가 급하게 달려 공을

다시 뺏고 동료에게 패스를 넘겼지만

 

골키퍼없는 그 짧은 시간에 모두가

가슴을 쓸어 내려야했다.

멘붕온 히딩크와 머리를 싸메는 핌 베어백 수석 코치

 

히딩크 감독은 격노하여 후반에

접어들자 김병지를 당장 교체시켜버렸다.

 

히딩크

"쟤 왜저래?!!"

 

박항서(당시 코치)

"그...가끔 저럽니다"

 

히딩크

"Are you kidding me?"

 

이 사건 이후 골키퍼 김병지는 

마치 윙어 포지션처럼

 

공을 드리블하여 나왔다고 하여

'윙병지'라고 불리게 되었고

 

하석주

"이게 올스타전인가요?"

(올스타전은 즐겜모드이다)

 

히딩크 감독은 김병지를 거의

출전시키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히딩크는 김병지를 출전시키지

않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히딩크

"김병지와 이운재 중에 선택하려고

계속 경기를 지켜보았다"

 

히딩크

"하지만 마지막까지

비슷해서 고민했는데"

 

히딩크

"최후 일주일간 이운재의 컨디션이

좋아서 이운재로 했다"

 

딱히 김병지가 눈 밖에 나서 

출전시키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히딩크는 한국 감독으로

인연을 맺기 전,

 

98년 프랑스 월드컵 당시 한국을

5:0으로 압살했을 때도

4번째 골을 먹히고 망연자실한 골키퍼 김병지

 

히딩크(네덜란드 감독 당시)

"우리는 더 많은 득점을 

할 수 있었지만"

 

히딩크(네덜란드 감독 당시)

"한국의 골키퍼가(김병지) 너무

뛰어나서 더 많은 골을 넣지 못했다"

 

라고 말하며 김병지를 상당히

인상깊게 보았음을 알 수 있다.

 

한국과 파라과이 경기는 승부차기 끝에

6:5로 한국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아쉽기도하지만 히딩크가 부임하고

거둔 첫 승리라 모두 희망적으로 고무되었다.

 

하지만 모두가 희망적으로

그를 바라본 것은 아니었다.

 

 

 

   의심   

 

하지만 히딩크가 한국에 부임하고

히딩크에 대한 기대가 커져갈때쯤,

 

모두가 히딩크를 환영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다름아닌 히딩크를 영입한

대한축구협회가

대한축구협회

 

히딩크의 행보를 예의주시하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얀 롤프스(당시 코칭 스탭)

"그들은 스파이였어요"

 

얀 롤프스(당시 코칭 스탭)

"한국 문화에서는 낯설지 않은

시스템이죠"

 

얀 롤프스(당시 코칭 스탭)

"북한과 휴전중인 나라여서 그런지"

 

얀 롤프스(당시 코칭 스탭)

"그런 스파이 문화가 존재했고

협회가 그런 역할을 했죠"

 

얀 롤프스(당시 코칭 스탭)

"우리를 못 믿은겁니다"

 

가장 큰 문제는 대한축구협회의 가치관과

히딩크의 가치관이 너무 다른 것이었다.

 

협회에게 월드컵이란

기회였다.

 

협회는 현대 그룹을 뒤에 업고

모든 지원을 빵빵하게 해주는 만큼

 

축구 관계자들이 자신들의

영향 아래에서 움직이길 원했고

 

월드컵 이후에도 협회 규모와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내부 결속을 단단히 하던

정치적으로 중요한 시점이었다.

 

히딩크가 처음 부임해 훈련을

시작하던 장소인 울산은

 

그곳에 있는 조선소, 호텔, 백화점 등

모든 것이 현대 그룹 소유였고

 

울산의 별명이 '현대 공화국'

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당시 현대는 재계 서열 1위,

오늘날 삼성과 같은 위치였어"

 

그러한 현대가 대한축구협회의

경영권을 독점하다시피 하였으니

 

현대의 힘은 곧 대한축구협회의

힘이라고 보아도 무방하였다.

 

히딩크

"현대의 권력과 영향력은

무척 뜻밖이었다"

 

히딩크에게도 월드컵이란

기회였다.

 

히딩크는 당시 FIFA 랭킹

40위에 불과한 한국이

 

월드컵을 개최하고 최초로 

외국인 감독인 자신을 부른만큼

 

반드시 성과를 보여야했고 유럽 빅리그에서

좌절된 자신의 입지를 지키려면

 

2002 월드컵을 자신의 커리어로

만들어야하는 굉장한 압박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니 축구협회와 관련된 정치싸움은

히딩크에게는 전혀 무의미했고

 

머나먼 이국 땅에서 믿을 것은 오직

자신의 안목과 경험 이 둘뿐이었다.

 

즉, 히딩크 자신의 안목과

믿음이 있다면 협회가 뭐라하던

 

협회의 정치 목적과 상관없이 독단적으로

행동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히딩크와 대한축구협회는

처음부터

 

같은 컵에 담겨있는

물과 기름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히딩크는 한국 대표팀이 일단

16강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면밀히

뜯어보며 관찰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히딩크가 지적한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체력이었다.

 

체력이라니.

 

체력이 문제가 될것이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이전까지 국내 축구

전문가들의 평가는

 

"한국 선수들은 체력과 배짱, 뚝심 등

피지컬과 멘탈은 강하기때문에"

 

"조직력 기반의 팀 축구는 잘해도

뒤쳐진 환경과 경험 부족으로"

 

"개인기와 기술이 부족하다"

 

라는 평가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는데

오히려 히딩크는 체력을 지적한 것이다.

 

히딩크

"한국 선수들의 기량이나 기술은

이미 수준급이다"

 

히딩크

"하지만 한국 선수들의 가장

큰 문제는 체력이다"

 

이에 대해서 대한축구협회는

히딩크와 다른 입장을 보였는데

 

축구협회와 언론이 보기에

한국 대표팀이 부족한 것은

 

유럽이나 남미 선수들이 보이는

탁월한 플레이와 화려한 기술이지 

 

체력은 결코 뒤쳐지지

않는다고 여긴 것이다.

 

대한축구협회

"우리가 체력이 딸린다는 소리는

처음 듣는데?"

 

대한축구협회

"말도 안되는 소리"

 

그리고 이는 히딩크의 안목이

정확했음이 증명되었다.

 

선수들의 체력을 테스트한 결과

대부분의 선수들이

 

체력 기준점에도 미치지 

못한 것이다!

 

"헐!"

 

이는 국내 축구 전문가들과 협회의

우물 안 개구리식 착각이 드러나며

 

한국 축구에 새로운 충격으로

다가온 사건이 되었다.

 

히딩크와 축구협회는 문제점을

바라보는 시각조차 달랐으니

 

다른 문제에도 입장을 달리하며

서로를 지켜만보았다.

 

하지만 선수들의 문제가 체력이냐

기술이냐는 오히려 작은 문제였으니

 

앞으로 다가올 문제에서 두 입장은

더욱 대립할 일만 남았다는 것이다.

 

 

   대립   

 

2001년 1월 12일, 히딩크와

선수들이 울산에서 첫 훈련을 한 날.

 

히딩크는 선수들의 훈련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선수들의 움직임을 초 단위로

분석해줄 비디오 분석관도 없고

 

군대식 체력 훈련에 전문 트레이너도

없는 열악한 환경으로 훈련하며

 

말 그대로 주먹구구식으로 

훈련하는 상황인 것이었다.

 

게다가 상대 전력을 분석할 때 단순

비디오 녹화 테이프를 보는게 전부였다.

 

히딩크

"...?"

 

히딩크는 곧바로 비디오 분석관을

투입시켜 상대팀과 한국팀을 찍고

 

편집하여 한눈에 알아보도록

장단점을 분석하였고

 

전문 트레이너를 투입해 강도높지만

전문적인 체력 훈련을 받도록 하였다.

 

또한 이전에는 선수가 부상이 있어도

감독이 뛰라고하면 뛰어야했는데

 

이런 관행을 뒤집고 부상에 관해서는

감독보다 주치의의 권한을 강화시켜

 

주치의가 무리라고 판단한다면

히딩크는 주치의의 의견을 적극 따랐다.

 

한국 축구에 선진적인 시스템과

프로그램이 도입되어가는 시기,

 

히딩크는 4월에 열리는 이집트 4개국

대회 출전을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대회를 앞두고 히딩크는 선수

선발 명단을 작성하며

 

어떤 선수를 선발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히딩크는 한국 선수들이 현상태로

유럽이나 남미 선수들을 따라잡기엔

 

근본적으로 여러가지 문제가

있다고 여겼기에

 

가장 기본이 되는 체력과 기본기가

확실한 선수들을 선발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대한축구협회는

입장이 달랐다.

 

한국 축구는 전통적으로

협회와 감독의 관계에서

 

협회가 대표팀에게 지원을

해주는 것만큼

 

협회는 선수 선발 결정권에 개입해

감독에게 암묵적으로

 

선수를 추천한다던지

꽂아 넣는다던지 하면서

 

협회의 생각과 판단으로 대표팀을

구성하려고 하였다.

 

물론 협회의 선수 선발 개입은

어느 정도 관여할 수 있기도 하지만

 

'기술 위원회는 선수 선발에 관해

추천 및 자문을 할 수 있다'

(대한축구협회 정관 제 51조 2항 2호,

제 52조 2항 2호)

 

그런데 문제는 협회 관계자들은

감독만큼 선수들과

 

밀착하여 유대를 쌓지도, 그만한

축구 안목이 있는 전문가도 아니었고

 

결정적으로 협회의 결정 사항이

선수의 역량이나 가능성이 아닌

 

정치적인 목적으로 둘러싸인

추잡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히딩크가 보기에는

이건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대한축구협회는 선수 선발일이 

다가오자 어쩌면 당연하게

 

히딩크 감독의 결정권에 개입하며

여러 선수들을 추천하였다.

 

협회는 히딩크에게 선수들을 

추천하는 동시에

 

마치 이 선수들을 뽑지 않으면

훗날 후회할 것이라 말하며

 

자신들이 추천한 선수들을 

선발하라고 압박하듯 말하였다.

 

히딩크

"내가 처음 왔을때 선수 선발과 관련해

뭔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히딩크

"이 선수는 어떻냐 저 선수는 어떻냐

은근히 압력을 넣었다"

 

히딩크

"누구를 선발했느냐고 묻기에 

선수들 이름을 나열했더니"

 

히딩크

"이 선수는 뭐가 단점이고 저 선수는

이래서 안된다는 둥 말이 많았다"

 

히딩크

"시간이 흐르면서 보니"

 

히딩크

"예전에 개인적 인연에 따라

선수를 선발했다는 인상이 들었다"

 

협회는 히딩크에게 이 선수를

왜 선발하냐고 따져 묻기도하고

 

협회가 추천한 선수가 명단에 없으면

왜 선발하지 않느냐고 언성을 높였다.

 

그러자 히딩크는

 

히딩크

"선수 선발은 감독이 하는 것입니다"

 

히딩크

"그리고 이번 이집트 대회 명단은

감독인 내가 직접 발표합니다"

 

라고 강경하게 말하며

물러서지 않았다.

 

협회 관계자들은

다급해져만 갔다.

 

선수 선발이 뜻대로 안되자

명단 발표라도 막으려고하였고

 

대한축구협회

"그럼 우리가 회의할 동안만

명단 발표를 신중하게 기다려주셈"

 

일단 명단 발표를 보류해달라고

거래를 제시하였다.

 

그러자 히딩크도 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히딩크

"이럴거면 도대체 왜 나를 

한국 감독으로 선임했나!"

 

히딩크

"진정으로 월드컵 16강에

진출하고 싶은것이 맞나!"

 

자리에 있던 협회 관계자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히딩크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기나 해?"

 

히딩크

"한국이 보유한 최고의 선수들을

선발해야한다!"

 

히딩크

"여기에 동의 하느냐!"

 

히딩크가 거의 꾸짖듯이 분노하자

협회는 그제야

 

선수 선발 결정권에 더이상

개입하지 않겠다고 하였지만

 

예외 조항으로 명단은 협회에서

발표하겠다고 명시하면서

 

최종 단계는 협회가 쥐고있는

상황을 만들었다.

 

대한축구협회

"뭐 나중에 우리가 개입하면 되겠지"

 

하지만 히딩크가 이 사실을

모르고 있던 것이 아니었으니

 

협회가 모르는 히딩크의 별명은

선수 길들이기의 끝판왕,

 

그리고 언론 플레이의 귀재였다.

 

 

   독단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리는

4개국 축구대회를 준비하기위해

 

히딩크는 포항 스틸러스를 직접

찾아가 관람하며

 

어떤 인재가 있는지 찾아보고

고민을 거듭했다.

 

하지만 그런 히딩크가 보기에

한국 축구는 아직 실망스러웠다.

 

히딩크

"한국 프로 축구는 너무 소극적이고

스피드가 떨어진다"

 

히딩크

"마치 선수들이 워킹 게임(Walking game)

하듯이 느슨하다"

 

히딩크의 가감없는 표현과 일침에

축구계는 충격을 받았지만

 

그래도 한국 축구가 발전하길

바라는 마음은 모두 같았다.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리는

4개국 축구대회 선발 명단은

 

4월 12일 오전 11시에

발표되는 것으로 확정되었다.

 

축구협회는 예정대로 명단 

발표를 준비했고

 

당일 오전 축구 회관에서 회의를

마치고 발표를 진행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히딩크는 무언가 다른

정보를 기자들에게 흘렸다.

 

4월 12일 오전 10시

공식 발표 1시간 전,

 

히딩크는 축구 회관에서

기술위원회를 마치고 

 

곧바로 기자회견장에 나와

선수 명단을 발표해버렸다.

명단을 발표하는 히딩크

 

축구협회가 공식 발표하기 1시간 전에

히딩크가 선수를 친 것이다.

 

히딩크

"대회에 출전할 선수는 황선홍,

하석주, 최성용..."

 

그리고 이러한 행위는 히딩크만의

독단적인 행동으로

 

대한축구협회를 완전히

무시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축구협회는 완전히 뒤집어지고

난리가 났다.

 

이런 감독은 전에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위 아래없는 감독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히딩크가 이렇게까지

행동할 수 있었던 근거는 바로

 

정몽준 회장과 가삼현 이사의

암묵적인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히딩크

"정 회장님과 가삼현 이사가

뜻대로 하라고하였다"

 

히딩크

"많은 저항을 받겠지만 우리가

막아줄 것이고"

 

히딩크

"우리는 시도한 적이 없으니

내 생각대로 하라고하였다"

 

이렇게 많은 어려움과 고민 끝에

결성된 히딩크호는 

 

4월, 이집트 4개국 축구 대회에서

이란을 1:0으로 이기고

 

이집트를 2:1로 꺾으며 꽤 괄목할만한

성과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4개국 축구 대회보다 

더 중요한

 

5월 컨페더레이션스 컵을 앞두고

거둔 승리라서

 

히딩크호 출범은 희망적이고

순조로웠다.

 

하지만 히딩크의 바람과 달리

희망은 오래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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