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게임
1996년 5월 31일, 스위스 취리히
국제 축구 연맹 FIFA 본부.
많은 인파와 기자들이 한데 모여
다가올 빅뉴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누군가는 초조하게, 또 누군가는
불안한 듯 마른 입술을 뜯고 있던 중,
소란을 깨고 FIFA 회장 주앙 아벨란제가
공식 발표 석상에 등장하였다.
모두의 시선이 멈추며 석상에는 카메라
셔터 소리만 가득한채 정적이 흘렀다.
주앙 아벨란제
"다가올 2002 월드컵 개최국은"
주앙 아벨란제
"일본과 한국이 공동으로 개최합니다"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한국 측 월드컵 준비 위원회와
고위 인사들은 그동안 수고했다면서
서로 부둥켜안고 어쩔줄 몰라하며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랐다.
그런데 정작 일본 측 위원회에서는 침울한
분위기에 빠져 패잔병같이 앉아있었다.
한쪽은 기뻐하며 마치 승리를
자축하듯 뛰었는데
한쪽은 아무도 기뻐하지 않았다.
신현웅(당시 청와대 문체 비서관)
"FIFA 총회장에서 한일 공동 개최가
발표되는 순간"
신현웅(당시 청와대 문체 비서관)
"한국 유치단의 환호와 일본 유치단의
침울한 분위기가 지금도 생생하다"
양측의 분위기가 이렇게까지 극명하게
대비되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당시 FIFA 회장
주앙 아벨란제는 이렇게 말했다.
주앙 아벨란제
"다가올 21세기의 첫 월드컵은
아시아에서 열고 싶다"
그동안 월드컵은 잘사는 유럽이나
축구에 미치는 남미에서만 전부 개최되어
아시아, 아프리카는 단 한번도
월드컵을 개최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세계가 즐기는 월드컵이라는
구색에 맞게
아시아 아프리카도 슬슬
개최를 고려해야했고
아시아 아프리카의 경제 성장을
보았을때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특히나 아시아의 경제 성장은
유례가 없을 정도로 폭발적이었다.
또한 월드컵 규모 확대와
대륙간 안배를 고려해서
월드컵 아시아 개최는
합리적이었다.
그리고 1986년 당시 국가 경제 규모로 보나
국가 위상으로 보나
아시아에서 가장 잘나가는 나라
일본이 월드컵 개최국으로 유력했다.
일본
"FIFA에서 월드컵을 아시아에서
개최하고 싶어하면"
일본
"우리말고는 솔직히 없지"
일본은 1989년 12월부터 월드컵
개최 의사를 표명하며
6개월만인 1990년 6월에 월드컵
유치 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일본은 정말로 아시아 최초로 월드컵을
개최하는 것에 진심이었다.
순서는 없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지
단 30년만에
어마어마한 경제 성장을 보여주며
미국을 따라잡을 정도였다.
아시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
아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나라,
모두 일본이었다.
그러니 일본이 아시아 최초로 월드컵을
개최하겠다고 하는 것은 호들갑이 아니었다.
1990년에 월드컵 유치 위원회를
발족시킨 것도 모자라
1993년에는 일본의 J리그까지
출범시키며 월드컵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일본
"우리가 이정도는 되지"
그런데 일본이 월드컵을 개최할 것이라고
순조롭게 진행되던 1990년 6월,
갑자기 대뜸 한국이 월드컵 개최
의사를 공식 표명하였다.
한국
"우리도 할래요"
일본
"??에??"
일본은 무척 당황했다.
한국같이 작은 나라가 갑자기
월드컵이라니.
그렇다고 일본보다 잘살거나 돈이 많은 것도
아니었기에 더 당황스러웠다.
일본
"야 니네가 무슨 월드컵이야;
그냥 내가 할게"
한국
"놉 우리도 할 수 있음"
일본은 한국이 월드컵 개최를
희망한다는것을 알게되자
1981년의 악몽이
떠오를 수 밖에 없었다.
일본은 1981년에 있었던
88올림픽 개최지 선정 당시
무난하게 일본 나고야에서 올림픽이
개최될 것이라는 꿈이 깨진채
한국의 필사적인 로비로
올림픽 개최가 나고야에서
서울로 넘어갔던
쓴기억이 있기 때문이었다.
일본
"와ㅆ"
일본
"이번엔 절대 안돼"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한국 전쟁 이후 40년 만에 이룬
한강의 기적을
88서울 올림픽을 통해 성공적으로
보여준 경험이 있는 한국은
이번 월드컵도 따내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싶어했다.
게다가 아시아 최초 월드컵
개최국이라는 타이틀을 두고
상대가 일본이라면 국민 정서상
반드시 이겨야했다.
한국
"일본은 못참지"
심지어 1990년 2월에 아시아 축구 연맹
탄 스리 함자 회장에게
탄 스리 함자
"한국이 개최를 희망하는 아시아
여러 나라 가운데"
탄 스리 함자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다"
라는 희망적인 말을 듣고 크게
고무될 수 밖에 없었다.
한국
"흠 88서울 올림픽도
일본 재치고 따냈는데"
한국
"이번 월드컵도 우리가
못할게 뭐임?"
그렇게 일본이 월드컵 유치 위원회를
출범시킨 1990년 6월,
같은 시기에 한국은 2002 월드컵
개최 의사를 밝힌 것이다.
거짓말처럼 개최 의사를
밝힌 나라는
한국과 일본 단 두나라
뿐이었다.
그리고 1993년, 월드컵 유치를 공약으로
내건 김영삼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다가올 준비
1993년 5월, 현대 그룹의 정몽준 회장에게
한 통의 연락이 갔다.
연락을 준 곳은 다름아닌 청와대.
상의할 내용이 있으니 청와대 오찬에
초청한다는 대통령의 메세지였다.
정몽준 회장은 채비를 마치고 이제 막
청와대의 안방 주인이 된
김영삼 대통령을 만나러
출발했다.
청와대에 도착해 두 사람이 만나 오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한창 분위기가 좋은 그때
김영삼 대통령이 말을 꺼냈다.
김영삼
"정회장"
김영삼
"회장이 총대를 메고 당신의 부친인 정주영이
88서울 올림픽을 완벽하게 유치했듯"
김영삼
"그의 아들인 당신도 이번 2002 월드컵을
멋지게 유치해보는게 어떻겠소?"
정몽준
"!!"
김영삼 대통령은 2002 월드컵을
한국에서 개최하기를 원했다.
게다가 일본이 2002 월드컵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진작에 접하자
일본이 월드컵을 마냥 개최하도록
놔둘수 없었다.
그리고 한국도 이번 월드컵을 개최할
충분한 여력이 가졌다고 자신감을 가졌고
월드컵 개최는 자신이 내세운
대통령 공약이기도 하였다.
물론 처음부터 김영삼 대통령이
월드컵 개최에 적극적인 것은 아니었다.
군사정부를 깨고 최초로 문민 정부가
출범한 탓에 국민들의 기대가 엄청났고
그만큼 대선 후유증이 심해 월드컵 개최는
잠시 뒤로 미뤄도 될 만큼
내부적으로 잡음이 계속해서
들려오던 상황이었다.
이런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월드컵 개최
이야기가 계속 대두되어 온 것이다.
신현웅(당시 청와대 문체 비서관)
"각하, 시국이 불안정해도 월드컵 개최를
성공하기만하면"
신현웅(당시 청와대 문체 비서관)
"현 정부가 달성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업적이 될것이고"
신현웅(당시 청와대 문체 비서관)
"경제적 효과는 물론 정치적 안정도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신현웅(당시 청와대 문체 비서관)
"군사 정부가 올림픽을 개최하였으니"
신현웅(당시 청와대 문체 비서관)
"우리 문민 정부는 월드컵을 개최해
시대에 선보여야 할 필요도 있고"
신현웅(당시 청와대 문체 비서관)
"일본이 월드컵을 준비한다는데 우리도
무언가를 보여줘야하지 않겠습니까"
김영삼
"..."
김영삼
"교문 수석 생각은 어때?
교문 수석도 같은 뜻이야?"
김정남(당시 청와대 교문 수석)
"충분히 일리있다고 생각합니다
비서진 생각도 모두 그러합니다"
김영삼
"그래?"
김영삼
"그럼 한번 추진해봐"
신현웅(당시 청와대 문체 비서관)
"그럼 현대 그룹 정몽준 회장을 청와대에
초청해 의사를 물어보겠습니다"
김영삼
"좋아 그렇게 하자고"
그렇게 현대 그룹 회장인 동시에
대한 축구 협회장인 정몽준에게
월드컵 개최를 위한 서포팅을 맡기고
서둘러 준비에 착수하기 시작하였다.
시간이 촉박했다.
일본은 이미 3년 전인 1990년 6월부터
월드컵 유치를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축구와 정치
월드컵 개최가 활발하게
논의되던 1993년,
한국은 대전 엑스포까지
성공적으로 개최하며
세계적인 축제를 맞이할 준비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그리고 1년후 정몽준이 아시아 FIFA
부회장에 당선되며
한국은 월드컵 핵심 인사가 선출된
개최국으로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게다가 한국은 88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대전 엑스포까지 개최하는 세계 경제
10위권 국가로 인정받으며
외신의 평가와 대외적인 입지도
점점 좋아졌다.
"Oh Korea!"
반면 일본은 80년대 이후 버블 경제가
한번에 꺼지면서
경제 성장률은 1%대로 폭락했고
국내 사정도 혼란했다.
도처에 보이던 벼락부자들은
모두 파산하였으며
밤과 낮이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불빛이 가득했던 도시는
약속이라도 한듯 네온과 불빛이
꺼지고 침체가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정이 모든 것을
대변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FIFA 회장 주앙 아벨란제가
21세기 첫 월드컵 유치를
아시아에서 개최하고 싶다고 말한것은
내심 일본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다.
일단 아벨란제는
브라질 사람이다.
브라질과 일본은 1905년부터 브라질에
일본인들이 건너가 이주해 살았을정도로
두 나라간 교류의 역사도 길고
서로 친숙했다.
일본
"도모다치데스네~!^^"
브라질
"아미고!^^"
게다가 아시아와 남미라는 지리적 범위를
생각하면 더욱 각별할 수 밖에 없는데
주앙 아벨란제
"한국은 전쟁위기가 있으니
일본에서 개최해야한다"
주앙 아벨란제
"나는 매년 휴가를 일본으로 간다"
라면서 FIFA 아벨란제 회장이
노골적으로 일본을 지지하였다.
하지만 세계는 브라질과 FIFA 회장
두 존재만 사는 곳이 아니었다.
주앙 아벨란제는 FIFA 회장에
무려 20년동안 집권 중이었고
2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자 곳곳에서
아벨란제 퇴물설이 나오며
차기 회장과 다음 FIFA 주도권을
누가 가져갈지 관심이 커지던 시기였다.
아벨란제는 FIFA 규모 확대를 위해
파격적인 스폰과 제휴를 맺고
FIFA 중계권을 팔아 FIFA를 부자로 만들어준
현대 FIFA의 아버지라는 평이 있지만
그만큼 불투명한 운영과 각종 비리 의혹에
휩싸인 불명예도 안고 있었다.
이런 아벨란제를 대적해 떠오른
유력한 회장 후보는
유럽축구연맹 UEFA 회장을 맡고있는
스웨덴의 레나르트 요한슨이었다.
요한슨은 아벨란제 집권으로
남미로 넘어간 FIFA 주도권을
다시 유럽으로 넘겨받기 위해
아벨란제 회장과 경쟁구도를 가졌으며
FIFA 회장 아벨란제가 일본을 지지하자
UEFA 회장 요한슨은 한국을 지지하였다.
레나르트 요한슨
"다음 월드컵 개최국은
한국이 적격임"
그러자 이번에는 브라질 축구의 전설
펠레가 일본을 지지하고 나섰다.
펠레
"나는 일본이 다음 월드컵을
개최하길 강력히 희망한다"
브라질 출신의 FIFA 회장과
브라질 축구 전설이 일본을 지지하자
이번엔 브라질과 역사적으로 앙숙인
아르헨티나가 나서기 시작하였는데
이번에는 아르헨티나의 축구 전설이자
펠레와 사이가 지독하게 안좋은
디에고 마라도나가 한국을
지지한 것이다.
디에고 마라도나
"월드컵 개최는 한국이 유력함"
게다가 브라질 식민지였다가 독립한
우루과이는 한국을 지지하였고
우루과이
"브라질놈들이 일본을 지지해?"
우루과이
"그럼 우린 당연히 한국!"
아르헨티나와 파타고니아를 두고
전쟁을 치룬 칠레는 일본을 지지하고
칠레
"아르헨티나놈들이 한국을 지지해?"
칠레
"그럼 우린 당연히 일본!"
칠레와 전쟁하여 영토를 상실한
볼리비아는 한국을 지지하였으며
볼리비아
"칠레놈들이 일본을 지지해?"
볼리비아
"그럼 우린 당연히 한국!"
볼리비아의 동맹 페루도
한국을 지지하고
페루
"볼리비아가 한국을 지지해?"
페루
"그럼 우리도 당연히 한국!"
페루와 영토분쟁이 있어 사이가 안좋은
파라과이는 일본을 지지하는 등
파라과이
"페루놈들이 한국을 지지해?"
파라과이
"그럼 우린 당연히 일본!"
월드컵 개최 문제는 반대를 위한
반대로 잡음에 휩싸였다.
FIFA회장 아벨란제와 UEFA회장
요한슨의 경쟁구도,
남미 축구 레전드 펠레와 마라도나의
경쟁과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관계,
남미 국가의 이해관계와
불신과 마찰,
남미와 유럽의 FIFA 주도권과
축구 경쟁구도 등
모든 것이 2002 월드컵 개최지
한국과 일본을 향해 있었다.
한국+UEFA회장+아르헨티나+마라도나
+우루과이+볼리비아+페루
VS
일본+FIFA 회장+브라질+펠레+
칠레+파라과이
2002월드컵 개최지 선정은 단순한
선정문제가 아니었다.
축구계의 정치싸움과 모든 분쟁
대결의 집합체였던 것이다.
그러나 언뜻보면 한국과 일본의
대결 구도가 팽팽해보였으나
사실 당시 국가 위상으로 보나
경쟁력으로 보나
한국보다는 일본의 단독 개최로
선정되는 것이 현실적이었다.
게다가 월드컵 개최지 선정에
더 힘이 있었던
주앙 아벨란제가 일본을 지지하고
있었으니 더욱 그러했다.
"음...그래도 일본이..."
이런 분위기가 지속된다면
한국의 월드컵 개최는
한순간의 꿈으로 남겨질 것이
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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