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
1961년, 케네디는 대통령이 되고
그의 동생을 법무부 장관에 임명하였다.
바로 로버트 케네디
(Robert Kennedy)이다.
로버트는 취임되자마자 그 자질에
관해서 구설수에 올랐다.
"아니 갑자기 동생을 법무부 장관에
임명한다고? 낙하산 아님?"
하지만 로버트는 1953년 메카시
상원의원의 법률자문으로 활약했고
버지니아 로스쿨을 나와 법무부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직무 능력에 관해서 크게
구애받지 않을 정도의 인재였다.
또한 1959년 노조 불법 행위 청문회 당시
노조장을 언변으로 밀어붙이는 장면은
전국의 TV에서 생중계되며 그를
일약 스타로 만들어주었다.
그럼에도 기자들과 여론 사이에서
계속 말이 나오자
존 F. 케네디
"나도 기뻐하고 우리 어머니도
기뻐하는데"
존 F. 케네디
"대체 누가 이 인사를 반대하는지
모르겠군 하하"
라고 능청스럽게 답변하며 오히려
대통령은 로버트를 감쌌다.
케네디가 로버트에게 법무장관을
맡긴 이유는 따로 있었다.
로버트는 미국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조직 범죄 문제를 직시하고 있었으며
바로 이런 조직 범죄를 소탕하고자하는
의지가 남달랐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노동 조합의 횡포나 갈취,
민족파별 갱단들,
그리고 특히 마피아 범죄.
로버트는 법무장관에 취임해 조직 범죄
전담 부서 인원을 60명으로 대폭 늘리고
각지에 우수한 인재들을 뽑고
능력있는 변호사를 채용하였다.
"흠...미국은 공권력도 강력하고 FBI,
CIA같은 전문 기관들도 있는데"
"이제와서 조직 범죄와 싸운다는게
뭔 소리임?"
"그동안 뭐했다는 거임?"
"미국이 조직 범죄나 마피아의 존재를
아예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야"
"하지만 당시 가장 급한 불은
조직 범죄가 아닌 공산주의였지"
"FBI나 CIA같은 기관들도 제 1순위로
공산주의자나 간첩을 잡아내려했고"
"그러다보니 마피아같은 범죄에
소흘해진 것도 사실이야"
"그리고 세계대전과 냉전을 맞이하면서
오히려 마피아와 협력한 적도 있으니까"
"그리고 FBI 국장 후버는 마피아를
이렇게 말할 정도였어"
존 에드거 후버( FBI 국장)
"마피아는 완벽한 반공주의자에
진실로 애국적인 훌륭한 미국의 사업가"
"아하...뭔가 찝찝하네"
당시에는 각 국가 기관의 신경전때문에
범죄 수사에 서로 협력이 안되었는데
"검찰 토마스 듀이와 FBI 후버의
신경전만 보아도..."
로버트는 대통령 동생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이들 기관의 협력을 이루어냈으며
'주간 범죄 방지법'을 제정하여
범죄 척결에 시동을 걸더니
시카고 마피아 조직원을 잡아내고
캔터키 불법 도박장을 털어내는 등
실제로 범죄 소탕에 효과가 있음을
증명해내었다.
사실 로버트의 조직 범죄 소탕은
말이 조직 범죄가 타겟이었지
실제로는 마피아를 겨냥한
일방적인 사냥이었다.
1960년에는 조직 범죄와 연루되어
수감된 조직원들이 총 35명이었는데
로버트가 법무장관에 취임한
1961년에는
불과 1년만에 121명의 조직원이
기소되어 73명이 유죄를 받았고
1962년에는 350명이 기소되어
138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1963~68년까지 무려 615명이
기소되어 288명이 유죄를 받았다.
그동안 사법 당국이나 정부의 눈치
볼 것도 없이 마구 사업을 하던 마피아는
로버트의 등장으로 밑도 끝도없는
재앙이자 심각한 방해물에 걸린 것이다.
로버트는 마피아 범죄 수사에
단단히 두팔을 걷어 부친 것이었다.
보스 그 이하
로버트 케네디의 타겟에는
여러 명이 포함 되어있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타겟 중 한명은
뉴올리언스의 마피아 보스
'카를로스 마르셀로
(Carlos Marcelo)'이다.
마르셀로는 이미 1951년 미국 상원
우버 위원회에서
'가장 악질인 범죄자 중 하나' 로
지명될 정도로 악평이 나있는 마피아였다.
사실 로버트 케네디와 마르셀로는
전부터 서로 얼굴을 아는 사이였다.
1959년 맥클레런 위원회 청문회 당시
위원회 자문단 대표로 로버트가,
청문회 증인으로 마르셀로가
그 자리에 출석했기 때문이다.
마르셀로는 로버트의 질문 공세와
강한 압박에도
단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며 수정 헌법 5조,
묵비권을 행사하며 철저하게 방어했다.
로버트와 마르셀로의 인연은
처음부터 악연이었던 것이다.
그런 로버트가 법무 장관이 되자
이제 마르셀로를 향해 칼을 뽑았다.
로버트는 조직 범죄 수사, 특히
마피아를 처단하기 위해서는
그 머리에 있는 보스급을 먼저
잡아 넣어야한다고 생각하였고
1961년, 법무 장관의 권한으로 마르셀로에게
강제 퇴거명령을 내렸다.
카를로스 마르셀로
"애송이가 감히 날 내쫓아!?
어림도 없는 소리!"
하지만 마르셀로는 당연히 콧방귀를 뀌며
로버트의 명령에 따르지 않았다.
1961년 4월 4일, 한가로운
뉴올리언스 거리.
거리를 걷고 있던 마르셀로는 갑자기
등 뒤가 오싹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의 뒤에는 덩치가 좋은
남자 두명이 그를 미행하고 있었다.
마르셀로는 침착하게 거리를 벗어나려
코너를 돌으려한 그 순간,
뒤에 남성들이 어느 새 마르셀로에게
달려들어 그를 완전히 제압하였다.
"억"
그런데 두 남성이 꺼내든 것은
총이 아니라 다름아닌 수갑이었다.
두 남성은 미연방수사국,
FBI의 요원이었으며
퇴거 명령에 불응한 마르셀로를
체포하라는 로버트의 지시였다.
마르셀로는 수갑에 채워진채 미리
대기하고 있던 차에 태워졌고
차는 빠르게 공항으로 달려 그대로
비행기에 태워져 남미 과테말라로 추방되었다.
이 과정은 어떤 설명도 없는
말그대로 강제로 버려진 셈이었다.
마르셀로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약점을 꼽자면
그에게는 미국 시민권이
없다는 점이었다.
마르셀로는 과테말라에 버려졌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무장 괴한들이 나타나 마르셀로를
한번 더 납치해
이번에는 400km 떨어진 온두라스의
정글에 버려둔채 그대로 사라졌다.
마르셀로는 너무나 황당하고 분노가
차올랐지만 일단 살고 봐야했다.
죽을 고비를 넘겨 간신히 정글을
벗어난 마르셀로.
그리고 미국에 남아있는 법적인 문제가
해결 될 때까지 두달을 기다려
어떻게든 미국으로 돌아온 마르셀로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80만 달러 세금 통지서.
난생 처음 겪는 엄청난 모욕에
마르셀로는 치를 떨어야했다.
그리고 마르셀로는 명맥있는 마피아의
대부이자 보스였다.
마피아의 보스를 이런 식으로
인간 이하로 다룰 정도라면
로버트가 마피아를 바라보는 시선이
어떤지 알만하였다.
로버트 법무 장관이 카를로스 마르셀로를
납치해 모욕을 주었다는 소문이 퍼지자
마피아들은 반공포와 패닉에
휩싸이게 되었다.
마르셀로는 일반 조직원이 아니라
뉴올리언스의 마피아 보스급이었고
그가 1950년대 말에 가져가는 수익이
9억 달러에 이르는 거물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루이지애나에서 마르셀로의
영향력은 엄청났는데
루이지애나 선거에 출마할
후보를 정하는 것도,
선거 운동 자금을 지원하고
후보를 서포팅하는 것도,
루이지애나의 법 체계를
뜯어 고치는 것도,
루이지애나 경제를 움켜쥐고 있는
존재도 바로 마르셀로였다.
그런데 그런 그가 36살 먹은 젊은
법무장관에게 큰 모욕을 당한 것이다.
마르셀로의 분노는 이루 말하지
못할 만큼 엄청났다.
하지만 로버트 케네디는 멈추지않고
다시 마피아 수사와 사냥을 준비했다.
로버트의 다음 타겟은 알 카포네의
뒤를 이어 시카고 마피아의 보스가된
'샘 지앙카나(Sam Giankana)',
CIA와 연합해 카스트로를 죽이려고
비밀리에 음모를 꾸민 바로 그였다.
로버트는 샘 지앙카나에게 24시간
미행을 붙여 도청을 실시했으며
그의 일거수일투족 어느것 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표적 수사가 시작하였다.
샘 지앙카나는 자신이 미국을 위해
카스트로를 죽이려고까지 했고
케네디가 대통령이 되도록
선거 조작까지 주도하였는데
로버트의 이러한 공격에
크게 분노하였다.
샘 지앙카나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애송이!"
로버트가 법무장관에 취임한 후
마피아, 특히 보스 급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는
이전에는 겪어보지 못했던
엄청난 공격과 같았다.
이 모든 것을 진두지휘한 대통령
케네디와 법무부 장관 케네디.
두 형제에 대한 마피아의 분노는
예상된 결과였다.
배신자
미국의 35대 대통령 케네디.
그는 곧 자신의 선거를
완벽하게 지휘한 동생
로버트 케네디를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하였다.
로버트 케네디가 법무부 장관으로
취임하고 가장 먼저 행동한 것은
조직 범죄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수사를 벌인 것이었다.
그간 반공주의에 휩싸여 조직 범죄를
모르쇠하던 미국의 정보 기관들은
대통령의 후광을 입은 법무부 장관의
명령에 따라 즉각 수사에 착수하였다.
뿐만 아니라 1963년부터는 마피아가
장악한 카지노와 라스베거스의
온갖 탈세와 스킴(Skiming)을 뿌리
뽑고자 대규모 수사를 계획하고 있었다.
로버트는 자신의 본분을 다해
조직 범죄 소탕에 온 힘을 쏟았다.
그러자 마피아의 심기가
불편했졌다.
말이 조직 범죄 소탕이지 케네디가
하고 있는 행동은
50년간 미국의 조직 범죄를 일삼아온
마피아를 저격하는 것이었다.
조직원들에 대한 수사와 체포에 이어
카지노까지 건들다니!
그런데 케네디의 도가
지나치기 시작하였다.
1961년에는 뉴올리언스의 마피아
보스 카를로스 마르셀로를
길거리에서 납치하여 정글로 추방시키고
세금 폭탄을 날리는 모욕을 주는가하면
시카고 마피아 보스 샘 지앙카나를
공공의 적 1호에 명단을 올리고
24시간 미행을 붙이고
도청하였다.
마피아, 그것도 보스들에게 가하는 행동은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폭력이었다.
샘 지앙카나는 다급해졌다.
자신은 대통령 케네디의 아버지
조셉 P. 케네디의 친구였고
심지어 케네디를 대통령으로
만들기위해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일등공신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돌아온 대접은 인간 이하의
모멸과 핍박이었다.
샘 지앙카나는 조셉 P. 케네디에게
다급히 연락을 넣었지만
조셉 P. 케네디도 케네디 형제와
전혀 연락이 되고있지 않은 상태였다.
마피아는 누구에게도 도움
받을 수 없는 처지가되었고
심지어 이런 핍박은 비단 샘 지앙카나
한 명에 그치지 않았다.
마피아들은 케네디의 행동에
크게 실망했으나
그래도 아직 희망이 남아있다면
그것은 쿠바 침공 계획이었다.
케네디가 약속한 쿠바만 수복된다면
마피아는 다시 엄청난 돈을 만질 것이고
그정도 돈과 명예라면 지금까지
핍박이 위로가 될만했다.
그리고 1961년 4월,
쿠바에 대한 피그만 침공
작전은 실패하였다.
작전에 대한 정보 부족과
지휘부의 오판과 실책,
그리고 작전의 비밀을 유지하기위한
케네디 대통령의 무리한 작전 변경.
케네디는 쿠바에 대한
두 차례 공습 작전을
미국이 개입한다는 사실을 꺼려
한 차례로 축소시켰고
피그만 상륙군에 대한 추가 포격과
보급을 취소하였다.
뿐만 아니라 피그만 해안에 고립된
상륙군의 추가 지원 요청을
미국이 개입한다는 사실을 숨기기위해
모두 무시하고
피그만에 도착한 상륙군을 단 3일만에
전멸시킨 것과 다름없었다.
쿠바 작전의 실패로 마피아의 실망은
분노로 바뀌었다.
심지어 쿠바에 대한 추가 작전을
보류하고 미온적으로 노선을 바꾸자
케네디를 대통령으로 만든 이유도
그러할 약속도 가치도 없어졌을 뿐더러
케네디는 이제 마피아의
배신자였다.
케네디 형제를 향한 마피아의
증오와 분노는 대단했다.
FBI의 도청 결과 마피아들은
통화 상에서 자주
케네디를 죽이겠다는 말을
반복할 정도였다.
카를로스 마르셀로
"언젠가 케네디를 죽이겠다"
그리고 1963년 10월,
마피아의 카포레지메(중간 보스)
'조셉 발라키'가 청문회에 등장하였다.
역린
1963년 10월, 마피아의
카포레지메(중간 보스) '조셉 발라키'가
조직 범죄에 대한 미 상원 특별 조사
위원회 청문회에 등장하였다.
발라키는 마약 밀매혐의로 수배중
자수하여 15년 형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그의 자수는 자신의 의지가 아닌
마피아 조직 내의 압력에 의한 것이라
감옥에 수감되면서도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조셉 발라키는 아틀랜타
연방 형무소에 수감되었는데
아틀랜타 연방 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는
사람은 발라키뿐만이 아니었으니
그곳에서 마피아 보스 '비토 제노베제
(Vito Genovese)'도 함께 있었다.
찰스 루치아노의 친구인
비토 제노베제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마피아 멤버
40명도 같이 있었다.
그런데 40명의 마피아들 중에서
제노베제는
유독 발라키에게만 싸늘하고
차갑게 대하였다.
이유는 발라키가 마약 수익금의
일부를 빼돌리고
제노베제 자신과 마피아를
배신하였다고 의심했기 때문이었다.
발라키는 자신이 감옥에 갇혀
제노베제와 함께있는 것이 매우 불안했다.
그런데 심지어 1962년 4월 8일
발라키의 친구 '토니 벤더'마저
집에서 외출 후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토니 벤더 실종 조사 결과 제노베제의
명령에 의한 것이라고 밝혀지자
발라키는 극심한 스트레스는 물론
피해망상에 시달리게되었다.
비토 제노베제라면 충분히
그런 짓을 할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제노베제는 발라키와
이야기를 하며 이렇게 말했다.
비토 제노베제
"사과 상자안에 썩은 사과가
하나 있다면"
비토 제노베제
"빨리 제거해야지"
비토 제노베제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과들까지
모두 썩어버리니까 말이야"
조셉 발라키
"..."
비토 제노베제
"우린 서로 알고 지낸지 오래됬으니
키스를 해주겠네"
조셉 발라키
"...감사합니다"
비토 제노베제
"발라키. 자네 손주가 몇명이지?"
조셉 발라키
"셋입니다"
비토 제노베제
"손주들 모두 건강했으면 좋겠군..."
제노베제와의 이야기 끝난 후
발라키는 등골이 오싹했다.
자신은 곧 죽을 것이었다.
제노베제의 키스는 곧
죽음의 키스이며
손주의 안부를 묻는 인사는
제노베제가 어디서든 얼마든지
발라키의 손주들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는 뜻일테니 말이다.
그리고 1962년 6월 22일.
발라키는 같이 수감되어있던
재소자 한 명을 죽였다.
발라키는 흥분하여 이 재소자가
자신을 죽이러왔다고,
제노베제가 자신을 히트하러 사람을
보낸 것이라고 말하며
쇠파이프로 구타하여
죽인 것이었다.
발라키가 때려 죽인 재소자가
정말로 제노베제가 보낸 히트맨인지,
애초에 제노베제가 키스를 건네며
발라키를 죽이려 한 것은 맞는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발라키는
심각한 피해망상에 사로잡혀있었다.
자신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마피아가
이제 자신을 내치려한다는 생각이들자
1962년 7월, 발라키는 그렇게
자신의 조직 마피아에게서 돌아섰다.
3개월 후, 당시 법무 장관이었던
로버트 케네디는 발라키를
조직 범죄에 대한 미 상원 특별 조사
위원회 청문회 증인으로 세웠다.
(제 2차 맥클레런 위원회)
일명 발라키 청문회였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발라키는
마피아의 모든 민낯을 드러내버렸다.
발라키는 1920년도에 있었던
뉴욕 마피아의 정점을 차지하기위해
마세리아와 마란자노가 싸웠던
카스텔라마레세 전쟁과
전쟁에서 승리한 마란자노와
마세리아의 죽음
마란자노의 마피아 규합과
마피아 계급의 탄생.
하지만 2인자 찰스 루치아노의 배신과
정점이 된 루치아노.
그리고 그가 만든 마피아의 기업형 조직
신디케이트와 5대 패밀리, 살인 회사,
그리고 이들을 이탈리아어로
'코사 노스트라'라고 부른다는 것.
마피아의 사업과 이권 쟁탈에 따른
모든 인물의 계보와
그간 일어난 살인사건의
배후와 음모.
누구도 몰랐던 마피아의 실체를
낱낱히 고발하였다.
조셉 발라키
"적들의 민낯을 보여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FBI의 기본 원칙은
조직범죄, 마피아란 없다 였는데
존 에드거 후버(FBI 국장)
"마피아는 완벽한 반공주의자에 진실로
애국적인 훌륭한 미국의 사업가"
발라키의 증언은 FBI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쇼크였다
발라키 청문회 한번으로 수십년간
지켜져왔던 마피아의 절대 비밀과
마피아의 절대 규칙
오메르타가 깨졌다.
그간 마피아와 유착을 통해
정치적으로 성공한 케네디.
그런 케네디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며
선거까지 조작하여 대통령을 만들었지만
약속했던 쿠바 수복을
실패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동생을 앞세워 자신들에게
칼을 뽑아들고 조직 범죄 척결을 운운하며
마피아에게서 벗어나고자
은혜를 저버리고 배신하려하고 있다.
거기에도 모자라 조직 핵심이었던
발라키를 청문회에 등장시켜
마피아 내부의 모든 비밀을 낱낱히
증언하도록 만들면서 오메르타 박살냈고
마피아의 역린을 건드리자 더 이상
마피아는 참을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1963년 11월 22일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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