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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피아

마피아 연대기 8 (FBI 섹스 스캔들+언더 월드 허스키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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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I 섹스 스캔들   

 

루이스 부챌터를 사형시킨건 그에게
자수를 권했던 마이어 랜스키였다.

 

랜스키는 살인회사를 남용해

조직을 와해시키고


권력을 키우는 부챌터가

부담스러웠다.


때문에 표면적으로 부챌터에게

자수를 권하면서도


내부에서는 부챌터가

사라지길 간절히 바랬다.

그래서 부챌터에게 자수를

권했을때도

 

FBI와 검찰에게도 은밀하게

이중 거래를 제안하였다.

마이어 랜스키
“얘기 좀 하러왔습니다”

 

토마스 듀이
“말해봐”

마이어 랜스키
“우리는 부챌터를 FBI에 자수시킬겁니다”

 

토마스 듀이
“그걸 왜 나한테 말해줘?”

마이어 랜스키
“FBI에 자수한 부챌터를 검찰이

넘겨받아 사형시켜주시죠”

 

토마스 듀이
“내가 왜그래야하지?”

마이어 랜스키
“부챌터를 놓고 FBI와 성과 경쟁하느라
아주 피곤하다는걸 알고있습니다”

마이어 랜스키
“부챌터를 넘겨받아 사형시키면 성과도 올리고
검찰 체면도 세우는 일 아니겠습니까?

토마스 듀이
“근데 FBI도 성과때문에 부챌터를

순순히 넘기지 않을텐데?”

마이어 랜스키
“그건 저희가 알아서하겠습니다”

마이어 랜스키
“그리고 한가지 더”

마이어 랜스키
“다가오는 주지사 선거에 이길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드릴테니”

 

마이어 랜스키
“대신 감옥에 있는 루치아노를
조기 석방해주십시오”

토마스 듀이
“....그건 지금 대답해주지 못할것같군”

마이어 랜스키
“한번 잘 생각해보시지요...”

듀이는 렌스키의 제안에 고민하는 척하였지만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다.

 

토마스 듀이

"호박이 넝쿨째 굴러오는구나"

이미 1938년 주지사 선거에서 패배한
경험이 있는 듀이에게

루이스 부챌터라는 새로운 재물이 생긴다면
선거에 다시 도전할 수있는 기회인 셈이었다.

토마스 듀이
“좋아 거래하지”

듀이는 렌스키의 제안을 받아들여
부챌터를 기소할 준비를 하였다.


남은 문제는 FBI가 과연 순순히
부챌터를 넘겨 주느냐인 것인데

사실 이 부분은 듀이가 걱정할
문제가 아니었다.

토마스 듀이
“윙?”

듀이는 모르지만 마피아만이 알고있는
FBI 국장 후버의 치부이자

 

미국 사회가 뒤집어질 정도의

엄청난 비밀

 

바로 후버가 게이라는 점이었다.

 

클라이든 톨슨(Clyde Tolson).

그는 FBI의 부국장이면서 후버의
동성연인이었다.

후버와 톨슨은 겉으로는 독신으로 살았지만
어딜가나 둘은 함께하였고

 

점심도 같이먹고 휴가도 똑같은 날갔으며
심지어 옷도 똑같이 입었다.

워싱턴 정계에서는 이미 둘이 연인이라는
소문이 돌았지만 다들 쉬쉬하는 눈치였다.


그만큼 후버의 파워가 엄청났고 워싱턴 정계의
더러운 비밀을 후버가 꽉 쥐고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FBI 국장이 동성애자라는
소문이 도는 것과

 

언론에 후버의 섹스 파티 사진이 돌아다니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랜스키는 유망한 동성애자

사업가를 섭외해

 

후버의 섹스 파티에 침투시켜 후버의

사진을 확보하고 후버의 숨통을 조여왔다.

하지만 마이어 랜스키는 이 사진으로
후버를 노골적으로 협박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피아와 FBI 사이에서 줄을 타며
서로 최대한 양보를 끌어내려하였고


FBI가 더이상 마피아를 건드리지 못하는
선에서 하나의 무기로 삼으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부챌터를 검찰에 넘기라는 랜스키의
요구에 FBI는 순순히 응할 수 밖에 없었고

 

마이어 랜스키

"부챌터를 검찰에 넘기시지요

안그러면 알지?"

 

존 에드거 후버

"..."

 

1940년 4월 6일, 살인 회사의 보스
루이스 부챌터에게는 사형이 선고되었다.

 

루이스 부챌터

"이럴수는 없어..."

이번일로 골칫거리 루이스 부챌터를 합법적으로
제거하는 것은 물론 그의 이권도 나눠가지고


검찰과 FBI의 체면을 세워 마피아는
다음 수사 타겟에서 제외될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마이어 랜스키 단 한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일이었다.

이제 남은 일은 보스 루치아노를 조기에
석방시키는 일이었는데

이게 말처럼 쉬운 일도 아니고 듀이와
거래하였어도 사실상 불가능하였다.

그런데 상상치도 못한 변수가
발생하였으니

 

대서양 건너편에서 전쟁의 불씨가
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필요악 必要惡   

 

1939년 9월 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다.


그러자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을 저지하고자
선전포고 함으로써 세계가 전쟁에 휘말렸는데

진격중인 독일 전차부대

 

독일의 공세는 실로 대단하였다.


1940년 5월 10일, 독일이 프랑스 침공을
개시한지 단 6주만에


유럽 육군 최강국이었던 프랑스를 박살내
수도 파리를 점령하였고

파리 개선문을 통과하는 독일군


곧 영국에 대규모 공군을 보내 영국 본토를
폭격하며 전세을 휘어잡았다.
(영국 본토 항공전)

영국으로 향하는 독일 공군부대


프랑스 정부는 런던으로 급히 피신하여
망명 정부를 세우는 신세가 되었으며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은 프랑스를
지원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했지만 처참히 깨져

 

덩케르크에서 간신히 목숨만 건진채
도망쳐 올 수밖에 없었다.
(덩케르크 철수 작전)

무기도 버린채 몸만 탈출해야했을만큼 급박했던 철수작전

 

곧이어 동부 유럽과 북아프리카, 소련에도
독일군의 공세가 이어지며

독일의 침공에 무너진 국가들


거의 전 유럽과 세계의 질서가 독일의 손에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한편 미국은 전쟁에 휩싸인 유럽으로부터
대서양을 끼고 6500km떨어진 안전한 곳에서

 

전쟁을 관망하며 직접 참전보다는 유럽에
군수물자를 팔아치우며 돈을 벌 생각이었다.
(영국과 프랑스에게 무기와 군수품을 지원)

미국
“굳이 참전해서 우리 젊은이들을
희생시킬 필요가 있나?”

미국
“유럽의 일에 함부로 개입하지 않겠음!”

하지만 그렇더라도 역사적으로나 핏줄로 보나
미국과 영국은 가족이나 다름없는 사이였고

1620년 영국을 떠난 청교도 개척자들이 만든 땅, 미국


프랑스와 1차 세계대전이후 긴밀하게
협조하고있는 우방국인지라

미국 내 여론에서도 참전하느냐 마느냐로
시끄러웠던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그러던 1941년 12월 7일,

 

일본이 선전포고도 없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자

일본의 공격으로 침몰하는 USS 에리조나

 

미국은 완전히 돌아버려 일본과 그 동맹국

독일, 이탈리아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했다.

 

미국

"감히 미국을 건드려!"

 

전쟁에 참전하게 되자 미국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진주만 사건으로 미국의 본토가

실제로 공격당한 충격이 엄청났고

 

미국이 다시 공격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날이 갈수록 커져갔다.

 

그렇게 미국의 안보에 가장 민감한

시기를 지나고 있었는데

 

“쾅!!”

1942년 2월, 뉴욕항에 정박해있던 SS 노르망디 호가
폭발로 침몰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미국
“!!”

그러자 미국은 경악하였다.

 

“그냥 선박 사고일수도 있는데 그렇게

충격받을 일인가?"

“배가 폭발했던 뉴욕항은 미국의 주요

수출입항 중 하나인 국가 보안 시설이었어"

 

“그런데 거기서 진주만 공격 2달만에

배가 폭발해버린거야”

 

“미국은 스파이가 뉴욕항을 공격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신경을 곤두세웠고”

“혹시나 있을 또 다른 공격에 대비해야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게돼”

“심지어 이때 폭발한 SS 노르망디 호는

곧 군함으로 개조될 예정이었지”

 

“아하 그럼 더욱 의심스러울수 밖에

없었겠네”

미국은 추축국의 공작으로 동부 항구가 파괴되고
본토가 공격받을까 심각하게 걱정하였다.
(SS 노르망디호 사건은 진짜 스파이의 소행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해 6월, 독일의 스파이가 FBI에
자수하면서 실체가 드러나자

독일 스파이
“나는 유보트를 타고 미국 동부 연안에서 내려
미국 땅으로 들어왔습니다”

미국
“!!”

미국의 해상 안전과 보안을 책임지던
미 해군 정보국은 비상이 걸렸다.

미 해군 정보국
“큰일났다”

 

미 해군 정보국
“이제는 스파이가 제집 넘나들듯이

미국을 침범하네”

미 해군 정보국
“근데 해군만으로 모든 항구를

지킬 수가 없는데...”

 

"미국 항구 관리를 너네만큼

잘아는 애들이 또 있음"

 

미 해군 정보국

"그게 누군데?"

 

"마피아"

 

미 해군 정보국

"??!!"

 

마피아는 항구 노동 조합을 꽉 쥐어

항구 조직에 대해 아주 잘 알고있으면서

 

이 영역만큼은 어쩌면 미국 정부보다

영향력이 더 크고 입김이 셌다.

 

또한 항구 노동자들의

다수를 차지하는

 

이탈리아계 미국인들과

훨씬 유대감이 깊었다.

 

"동포아이가"

 

그리고 미국은 그런 마피아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에 놓여있었고

 

그렇게 미국 정부와 마피아의

은밀한 협조가 떠오른 것이다

 

마피아의 협조를 위해서는

감옥에 있으면서도

 

마피아의 정점에서 여전히

보스로 군림하는

 

찰스 루치아노와 접촉이 시급하였다.

 

미국

"야 너 일로 와봐"

 

루치아노

"?"

 

미국

"거래할래?"

 

루치아노

"??"

미국 정부는 뉴욕 클린턴 교도소에

50년 형을 받고 수감되어 있는

 

루치아노에게 일정 형량을

줄여줄테니 거래를 제안하였고

 

루치아노는 이를 받아들여

정부와 범죄자간의 밀회가 더욱 많이
그리고 더 깊어졌다.

 

미국

"너네의 임무는 항구에서 의심스러운 활동을

즉각 보고하고 감시하도록..."

 

미국

"특히 너네 말만 잘 듣는 이탈리아계

노동자들을 중점으로 말이야"

 

루치아노

"알겠습니다"

 

불과 몇 년전에 쫓고 쫓기던

범죄자와 적 사이에서


미국 정부와 마피아는 이제 친구가
되어 서로의 이익을 거래하였다.

 

바로 마피아와 미 정부간의

비밀 공작 프로젝트

 

코드명 언더월드 작전(Operation Underworld).

언더월드 프로젝트-미 해군과 마피아의 연합

 

언더월드 작전으로 미국은 전시에 필요한

협조를 마피아를 통해 쉽게 얻을 수 있었다.


당시 미국은 준전시 태세에

돌입하기 위해

 

항구의 모든 불빛을 끄는 등화관제를

실시하고 있었지만

어업과 상업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인부들이
그다지 협조적이지 않았다.

미국
“불 다 끄세요!”

항구 인부
“불끄면 물고기들 다 도망간당께”

하지만 언더월드 작전으로

마피아가 개입하자

 

거짓말처럼 바로 항구의

모든 불이 꺼지고


상선과 어선도 미 해군에

특이사항을 즉각 보고하며

 

이전과는 다르게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등 태도가 달라졌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마피아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공권력이 할 수 없는일을 마피아들이
대신하기 시작하였다.

마피아
“우리쪽 상선하고 어선들 감시선으로

사용해서 해안 경비하는데 협조할게”

마피아
“항구 인부들 등화관제 참여, 이상 상황
즉각 보고하도록 조치해줄게”

마피아
“동부 연안에 있는 항구 노조들 파업하지
못하게 손써줄게”

마피아
“수상한 사람이 호텔 들락거리면 호텔 종업원
노조 활용해서 숙소 싹다 뒤져줄게”

마피아
“전쟁 반대 포스터, 반전 출판지 그리는 애들
발행 못하게 출판업자들한테 말해둘게”

실제로 언더월드 작전 기간동안
파업이 단 한 차례도 일어나지 않았고

 

수상하다는 이유 하나로 민간 시찰에 해당하는
불법 도청 행위를 마피아를 통해 해결했으며

 

반전 여론은 미디어에 아예
노출되지 못했다.

 

“미국의 법치보다 마피아의 주먹이
더 가까운 것을 실감할 수 있지”

게다가 미국이 전쟁에 본격적으로
참전하기 시작하자 상황은 더 긴박하게 돌아갔다.

 

 

   시칠리아 마피아의 부활   


2차 세계대전의 주요 참전국들의
양편을 갈라서보면

미국 영국 프랑스를 중심으로 모인 연합국과

 

독일 이탈리아 일본이 모인 추축국으로
나눌 수있다.


독일이 유럽을 휩쓸던 1941년, 일본은
미국의 태평양 함대를 무력화하여

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단절시키고
일본의 공영권을 만들기위해

일본이 구상한 대동아공영권


1941년 12월 7일, 하와이 진주만을
선전포고없이 기습,

일본의 공격으로 침몰하는 USS 에리조나

 

사상자 3500여명, 미 함선 18척 파괴,
항공기 247기를 손상시켰다.
(진주만 공습)

공습으로 불타는 항구


이에 미국은 분노하여 발발 하루만에
일본과 추축국을 상대로 선전포고하며

 

프랭클린 D. 루즈벨트

"...(중략) 본인은 의회가

1941년 12월 7일 일요일"

 

프랭클린 D. 루즈벨트

"일본의 부당하고 비겁한 공격 이후"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미국과 일본 제국 간 전쟁 상태가

성립되었음을 선언하기를 요청합니다"

(치욕의 날 연설문 일부 발쵀)

전 국토가 비상 생산체제에

돌입해 유럽으로,


태평양으로 미군이 직접

참전하게되었다.

 

1943년, 미국의 참전으로 연합국에게
전세가 기울기 시작하였다.

이에 연합국은 유럽 전선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


지중해 한가운데에

떡하니 놓여있는

시칠리아 점령 작전을 세워 승기를
굳히고자하였다.

지중해 한가운데에 놓인 시칠리아 (빨간 섬)


하지만 작전이 성공하려면 시칠리아 내부 정보와
지리를 훤히 알고있는 조직이 필요했다.

미국
“시칠리아가 이탈리아 땅이라 언어도 다르고
현지인들이 협력 안해줄거같은데”

미국
“괜히 들어갔다가 막히면 저항만 심해지고
다음 작전에도 차질이 생긴다고”

“시칠리아에 아직 마피아가 있다는데
걔들을 이용해보는건 어떰?”

미국
“마피아 애들 믿을만해? 꺼림직한데...”

“우리한테는 루치아노가 있자늠”

미국
“아하!”

그렇게 미국은 잊혀져있던 시칠리아 마피아와

연합하는 작전을 구상하게되는데

 

코드명 '허스키 작전(Operation Husky)'이었다.


시칠리아 마피아는 무솔리니의
대대적인 탄압으로 인해

권력강화를 위해 마피아를 탄압한 무솔리니


조직원들이 대부분 미국으로 떠난 이후로
명맥만 유지한채 소멸 직전까지 몰렸다.

 

시칠리아 마피아 입장에서 무솔리니는

조직을 분해시킨 악질 독재자일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미국이 루치아노를 앞세워
시칠리아 마피아를 필요로 하고있었다.

 

시칠리아 마피아

"무솔리니라면 치가 떨린다"

 

시칠리아 마피아

"무솔리니를 내쫓을수만있다면

뭐든지 하겠어"

 

루치아노

"나 기억하지 찰스 루치아노"

 

루치아노

"비록 몸은 미국에 있으나 나도

로마의 피가 흐르는 시칠리아 마피아야"

 

루치아노

"내가 있는 미국과 연합해서

독재자 무솔리니를 몰아내자"

 

루치아노

"우리 선조 마피아들의

치욕을 씻어내고"

 

루치아노

"잃어버린 우리 이권도 되찾자"

 

미국

"적의 적은 아군인법. 같이 싸우자"

 

시칠리아 마피아

"좋다 함께하자"

 

루치아노의 주선으로

시칠리아 마피아들은


기꺼이 미국과 협력하여

눈과 귀가 되어주었다.


통역관으로 활동하기도 하고

지리를 안내하며


작전을 상세하게

돕기도하였으며

항복하는 이탈리아군


시칠리아의 지역 대부로

활동하던 마피아들은


방어선을 지키는 이탈리아

병사에게 접근해

탈영을 권유한다던지 항복을 권하며
설득하기도 하고 돈을 쥐어주기도 하였다.

지역 대부(마피아)
“여기서 죽는건 개죽음이야 자네들 같은
청춘을 이딴 전쟁에 버릴텐가?

이탈리아 병사
“...잘 모르겠어요”

지역 대부(마피아)
“어차피 이 전쟁은 지게되있어 왜 무솔리니같은
무능한 자를 위해 피를 흘리냐는 말이야”

이탈리아 병사
“...”

지역 대부(마피아)
“미안하네 자네들이 너무

안타까워서 그랬네”

지역 대부(마피아)
“여기 한 사람당 100리라를 남기겠네
뜻이 있는 자는 살아서 도망가게”
(리라 lira-당시 이탈리아 화폐 단위)

이탈리아 병사
“...”

다음 날이면 한 부대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연합군이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일화도 있다.

시칠리아 침공은 성공적이었다.

시칠리아에 상륙하는 영국군

 

36주의 작전 기간동안 50만명

연합군 병사들 사이에

 

정보원, 통역관으로

마피아가 섞여 협력해

 

이를 발판으로 지중해 해상을

장악한 것은 물론

지중해 한가운데에 놓인 시칠리아 (빨간 섬)


이탈리아 본토로 들어가

독일 턱밑을 겨냥하였다.

그리고 1945년 5월 8일, 이탈리아와 독일이
항복하면서 유럽전선은 막을 내렸다.

항복 문서에 조인하는 독일군 마지막 사령관, 프리데부르크


이 결과에는 분명 마피아의

공로도 있었고


그 중심에는 루치아노가 있었다.

가운데 루치아노

 

죽어있던 시칠리아 마피아는 허스키 작전으로

연합국과 미국의 편에 서서

 

파시스트와 나치와 싸운다는 명목으로

세력을 키우며 다시 부활할 수 있었다.

 

그렇게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언더월드 작전도 종료되었다

 

미국은 언더원드 작전을 끝냄과 동시에

루치아노와 거래도 끝내야했다.

 

토마스 듀이
“이제 거래 마무리하자”

토마스 듀이
“징역 50년 중에 지금 8년째
복역하고있지?”

토마스 듀이
“지금 즉시 석방해줄게”

토마스 듀이
“단 이탈리아로 추방되고

다시는 미국으로 돌아오지마”

 

루치아노
“알겠습니다”

 

1946년, 강제 추방을 조건으로 

루치아노는 그렇게 석방되었다.

복역한지 4년만에 뜻밖의

기회가 찾아오고

 

50년 징역 중 8년만 채우고

석방된 루치아노.

 

그의 별명이 왜 럭키 루치아노인지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토마스 듀이는 1942년에 또 다시 

뉴욕 주지사 선거에 도전하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선거에서 승리하여

그토록 바라던 뉴욕의 주지사가 되었다.

 

물론 몇 년전 루치아노를

가석방하는 조건으로 

 

마이어 랜스키와 주지사 선거

지원에 관한 모종의 얘기가 오간 것과

 

루치아노의 대리인을 통해

9만 달러에 달하는

 

정치자금과 각종 지원을

받은 것은 비밀이었다.

 

루치아노는 미국에서 쫓겨난뒤

고향 이탈리아로 돌아갔지만

 

이탈리아에 머물면서도 미국 내 마피아

사업은 아직 놓지않았다.

 

루치아노

"아직은 내가 보스라고"

 

때문에 미국 마피아와 회합을 가지기 위해

사업차 쿠바로 건너갔는데

미국 턱밑에 위치한 쿠바

 

이 사실을 안 미국은 쿠바 정부에 압력을

가해 쿠바에서도 강제로 출국하게 만들었다.

 

미국

"얼씬도 하지 마"

 

루치아노

"너무한거 아닌교"

 

그렇다고 고향 이탈리아에서 좋은

대접을 받는 것도 아니었다.

 

이탈리아 정부는 돌아온 루치아노를

극도록 경계하며 1급 범죄자로 다뤘다.

 

1949년 7월, 로마 경찰은 뉴욕으로 마약을

운송한 혐의로 루치아노를 체포해

 

일주일동안 감옥에 가둔후 석방하고는

영구적으로 로마 방문을 금지했다.

 

1952년에는 미국과 캐나다의 항의로

루치아노의 여권이 취소되었고

 

1954년 11월에는 나폴리 사법 위원회에서

루치아노에게 엄격한 제제를 가했는데

 

루치아노는 향후 2년간 매일 밤마다

자택에만 머물러야했고

 

매주 일요일마다 경찰에 자진 신고해야 하며

경찰의 허락없이는 나폴리를 떠날 수 없었다.

 

루치아노

"..."

 

반복되는 제한으로 루치아노의 미국 내

입지는 상당히 약화되었지만

 

1957년에는 시칠리아 마피아와 미국 마피아의

회담을 보란듯이 성대하게 주선하며

 

아직은 루치아노의 세상이

끝나지 않았음을 과시했다.

 

비상한 머리와 타고난 기질, 마피아의

영원한 대부였던 루치아노.

 

1962년 1월 26일, 나폴리 공항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그의 나이 64세, 그가 가는 길에는 2천명이

넘는 조문객이 모여 그를 추도했다.

 

하지만 루치아노의 죽음은 곧 새롭게 부상한

마피아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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