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독재자의 등장
마피아는 파트론-클라이언트를 통해
고위층과 접촉하면서
권력자의 보호아래 검은 돈을
벌어들이며 조직을 키웠다.
1900년 대에 들어서자 마피아의 돈을
받지 않은 정치인 없을 정도로
마피아의 정치적, 사회적 입지는
더 이상 동네 조폭이 아닌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탈리아 국내 정치는
격변을 겪고 있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이탈리아도
엄연한 승전국이었지만
같은 승전국인 영국과 프랑스가
엄청난 돈과 영토를 얻은 것에 비해
이탈리아에게 돌아온 것은
'티롤'이라는 조그만 땅이 전부였다.
이탈리아인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이럴거면 왜 목숨걸고 싸운거야"
이탈리아인
"똑같이 피흘렸는데 이정도라니..."
이탈리아인
"우리 정부는 뭐하는 놈들임?"
이런 푸대접에 이탈리아는
당연히 크게 반발하였고
때마침 러시아에서 일어난 공산 혁명의
열풍이 유럽까지 번지면서
사회 전체적으로 무정부주의와 공산주의가
흉흉하게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차라리 국가도, 정부도 없었으면..."
그러던 1922년 10월, 검은 셔츠를 입은
한 무리의 청년들이 로마로 진군하였다.
이들의 이름은 '검은 셔츠단'.
무정부주의자와 공산주의자들이
사회 곳곳으로 퍼지자
이를 이탈리아를 혼란하게하는 주범으로 여겨
때려잡고자 나선 것이다.
검은 셔츠단
"이탈리아를 혼란하게 만드는
무정부주의든 공산주의든"
검은 셔츠단
"직접 응징하겠다"
이들이 로마로 진군하자 추종세력까지
더해져 규모는 더욱 커졌고
힘없는 이탈리아 정부는 이들이 로마로
몰려 올때까지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로마에 도달한 검은 셔츠단은
총리 '루이기 파크타'를 실각시키며
쿠데타를 감행하였는데 이들을
이끄는 정점에 있는 사람이 바로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Mussolini)'였다.
그로부터 1년 뒤, 무솔리니는 헌법에 의한
이탈리아 독재자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지방 자치를 폐지하고
분권되어 있던 이탈리아 남부와
시칠리아 지배를 강화하고자 하였는데
그러려면 가장 먼저 시칠리아를 꽉 잡고있는
마피아를 처단해야한다고 생각하였다.
무솔리니
"어떤 희생을 치뤄도 마피아를
뿌리뽑고 말겠다!"
갑자기 등장한 독재자의 선포에
마피아는 비상이 걸렸다.
마피아와 연루된 정치인들은
모두 퇴출되었으며
그동안 정치인과 결탁해 범죄를
저지르며 너무 많은 민심을 잃어
예전과 달리 주민들도 마피아를
지지하지 않았다.
"꺼져라 마피아!"
마피아 소탕이 시작된 1925년부터
종료된 1929년까지
마피아에 관련된 자들만 11000명이 체포되고
그 중 2000여명이 수감되었다.
한마디로 마피아는 하루아침에
완전히 붕괴된 것이다.
위기가 기회가 되다
무솔리니는 시칠리아 내에 마피아를
철저하게 탄압하였고
그 결과 상당수의 마피아 조직원들은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이전부터 많이 이탈리아인들이
아메리카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이주했기 때문에 마피아들도
미국을 제 2의 터전으로 삼았던 것이다.
마피아
"요즘 미국이 잘나가니까
가보면 뭐라도 있겠지"
이때가 바로 미국으로 떠난
미국 마피아와
기존의 시칠리아 마피아로
조직이 갈리게 되는 계기가 된다.
1920년대 당시 미국은 1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신흥 강대국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아메리카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대거 이민을 떠났는데
"가자 미국으로"
문제는 넘쳐나는 이민자들만큼 사회불안과
범죄율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급증하는 것이었다.
미국
"범죄때문에 나라가 너무 흉흉하다"
미국은 1890년대부터 사회개선과
도덕 재건을 목적으로
금주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는데
이러한 사회 풍토 탓에 범죄 증가의
원인으로 쉽게 술이 지적되었고
특히 술에 관대한 이민자들이 벌이는
음주 범죄는 용납되기 어려웠다.
미국
"역시 술이 문제다"
미국
"그렇다면 이제부터
술은 모조리 금지!"
미국
"술 만들거나 사고 파는 것도 금지!"
미국
"술을 끊고 공중 도덕과
건강을 챙깁시다"
그리하여 1920년, '금주법'을 시행하여
사회를 단속하고자 한 것이다.
(1920년 1월 17일~1933년 12월 5일)
수정헌법 18조(금주법)
"이 조항이 비준된 지 1년 후, 주류의
제조, 판매 또는 운송, 수입, 수출은
수정헌법 18조(금주법)
"미국과 모든 사법권이 미치는
영토에서 음료용 주료는 금지된다."
하지만 금주법이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인간의 욕망이었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수천 년간 마시던 술을
종이 한 장으로 하루 아침에 욕망을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차라리 술을 못마시게 만드는 제도에
도전하여 이를 회피하려는 시도가 늘었고
오히려 술을 몰래 만들고 비싼 값으로
파는 밀주사업이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미국인
"고기 맛을 본 스님이 담장 넘는다고"
미국인
"술 맛을 이미 알아버렸는데"
미국인
"갑자기 못먹게하면 어떻게 참나"
사회 전체적으로는 금주법이 잘 지켜졌지만
암암리에 술은 계속 사고팔렸다.
심지어 술 수요량보다
공급량이 딸려서
술은 그야말로 부르는게 값인
귀중한 몸이 되었다.
"이때 Canadian Club 위스키 한병이
16달러에 팔렸는데"
"지금 가치로 한 병에
무려 60만원에 팔린셈!"
상황이 이러니 돈냄새를 맡은 미국
마피아들도 밀주사업에 뛰어들었고
바로 여기서 마피아계의 전설이자
보스의 정점을 찍은
'알 카포네(Al Capone)'가 등장한다.
알 카포네는 이탈리아 나폴리 출신
이민자의 아들로
뉴욕에서 태어나 뉴욕의 유명 갱단
'파이브 포인트' 갱에서 활동하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주먹이 셌는데
특히 1:1 싸움은 져본적이 없기로 유명했다.
그러다가 자신의 파트론인 '조니 토리오'의
요청으로 시카고로 떠나게 되고
시카고 마피아 조직인 '시카고 아웃핏'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이름을 날렸다.
카포네는 금주법을 틈타
밀주를 제조하고 유통하며
시카고 마피아를 순식간에
성장시켰다.
금주법이 미국 역사상 최악의
범죄자를 만든 셈이었다.
알 카포네
"내가 술을 주니 그걸 밀주라고 하더군"
알 카포네
"그런데 은쟁반에 담아 주니
접대라고 한다"
알 카포네
"세상이 이렇게 웃긴거야"
카포네는 시카고 마피아에서의
자기 권력을 점점 굳혀갔다.
그는 자신을 배신하거나 위협적인
경쟁상대를 제거하며 권력을 키웠는데
그 방법이 보는 사람도 눈뜰 수
없을 정도로 잔인했다.
알 카포네는 이탈리아의 밑바닥에서
미국으로 건너와
간신히 크게 성공해 정점에 오른
희대의 범죄자이다.
다시 말해 길바닥에서 일상처럼
싸우고 암살 위협을 느끼면서
그 자리까지 오른 것이라 자신을
위협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응징하고 필요 이상으로
잔인하게 대했다.
먼저 자신의 경쟁 상대나 적을
식사나 연회에 초대한다.
그리고 이들을 배불리 먹이고
즐겁게 파티하다가
이들이 긴장이 풀릴 때쯤 덮쳐서
의자에 꽁꽁 묶은 다음
야구 방망이와 각목으로 뼈마디를
내리쳐 산산히 부러트려 버렸다.
그리고 마지막에 총을 쏴 죽였다.
시체가 발견되어 부검을 해보면
온 몸에 뼈가 모두 박살나있었다고 한다.
"죽기 직전까지 고통이라는 고통은
다 느끼고 죽는거지..."
당연히 이렇게 죽어간 희생자들의
주변인들에게 이런 소문이 퍼지고
"며칠 전 내 친구가 카포네에게
맞아 죽었다는데"
"온몸이 완전히 박살 나 있어서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네"
"저런..."
소문이 퍼지면 그 잔인한 방법에
모두 겁을 먹을 수 밖에 없었다.
카포네는 이런 소문이 퍼져 싸우지도 않고
겁을 먹는 효과를 노려서
더욱 잔인하고 확실한 방법으로 정적들을
제거하고 응징하였다.
이렇게 시카고 마피아의 정점에 오르면서
모든 일이 잘 풀리는 듯 하였다.
그러나 알 카포네에게 적이
없을 수는 없었다.
발렌타인 데이 학살
알 카포네는 시카고에 성공적으로
정착해 시카고 마피아를 키우고
자신도 보란듯이 재기에
성공하였지만
그를 위협하는 또다른 조직,
시카고의 '노스 사이드 갱'이 있었다.
두 조직은 세력을 넓혀가며 서로의
영역을 두고 조금씩 마찰을 빚었는데
당시 범죄 트렌드였던 밀주 사업마저
똑같이 겹치자
아예 서로를 눈엣가시로 여기며
으르렁거리기 시작하였다.
노스 사이드 갱은 시카고 마피아의
밀주 트럭을 강탈하면서
시카고 마피아 조직원을 상대로
암살을 시도하였고
이에 질세라 시카고 마피아는 노스 사이드 갱이
제조한 밀주를 파는 상점에 테러하며
두 조직간 언제 전쟁이 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팽팽히 대립하였다.
그러던 1929년 2월 13일, 노스 사이드 갱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디스트로이트에서 위스키 트럭을
탈취했습니다."
"이 위스키를 케이스당 57달러에
팔려고 하는데 어떠십니까."
노스 사이드 갱
"오호"
꽤 괜찮은 거래였다.
노스 사이드 갱은 흔쾌히 수락하였고
다음 날 차고 본부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다음 날인 1929년 2월 14일
발렌타인 데이 당일,
거래를 위해 차고 본부에 모여있던
노스 사이드 갱 7명 앞에 경찰 차량이 멈춰섰다.
"끼익--"
노스 사이드 갱 1
"뭐여"
노스 사이드 갱 2
"들켰나?"
차량에서는 경찰복을 입은 2명과
정복을 입은 3명의 남성이 내렸는데
"모두 벽보고 일렬로 서"
느닷없이 벽을 보고 가만히
서있으라고 지시하였다.
아무리 폭력적인 노스 사이드 갱이어도
경찰은 건드릴 수 없어서
7명 모두 시키는 대로
벽을 보고 서있었는데
"타 다다다다 타다"
갑자기 경찰복을 입은 남성들이
노스 사이드 갱들에게 총을 쏘는 것이 아닌가!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창고에서 빠져나와 도주하였다.
이 사건으로 6명이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한 명은 병원으로 실려갔지만 사망하였다.
노스 사이드 갱은 발칵 뒤집혔다.
노스 사이드 갱
"이게 뭐야!!"
노스 사이드 갱
"경찰이 벌건 대낮에 총을 쏴?!!"
노스 사이드 갱
"경찰이고 뭐고 다 죽었어!"
하지만 경찰도 발칵 뒤집히긴
마찬가지였다.
경찰
"우린 출동한 적이 없는데 어떤
놈이 일 저질렀어"
경찰
"당장 조사해서 바로 보고해!"
하지만 조사 결과 시신에서는
경찰이 쓰는 권총탄이 아닌
톰슨 기관단총으로 온몸이 난사된
총알 흔적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톰슨 기관단총은 시카고
마피아가 애용하던 총이었다.
마피아와 톰슨 기관단총
마피아와 톰슨 기관단총
마피아는 태생부터가
범죄 조직이다보니
마피아를 둘러싼 정적들이 많았고
이들과 다툼도 잦았는데

서로를 죽이고 암살하면서
큰 충돌도 굉장히 많았다.
그리고 이들과 싸우기 위해 마피아가
꺼내든 무기는 바로
'존 탈이라페로 톰슨'이 개발한
톰슨 기관단총이었다.

마피아는 조직 간의
대결과 암살에서

적에게 근접해 다가가
총을 난사하고
빠르게 현장에서 사라지는
'히트 앤 런(Heat and Run)'을 주로 썼다.
때문에 적당한 사정거리를 가지고
상대를 빠르고 확실하게 제압하면서
다루기도 쉽고 총알을 한번에
퍼부울 수 있는 총이 필요했으니
연발로 드르륵 갈기면서 사정거리도
무난한 기관단총이 선택되었다.
그리고 수 많은 기관단총 중에서
분당 1500발 총알을 퍼붓는 미친 총
톰슨 기관단총이 선택된 것이다.

최초로 톰슨 기관단총으로 마피아가
암살을 시도한 건 1925년으로
밀주업자 루카스 오도넬을 톰슨
기관단총으로 난사한 사건이다.

루카스 오도넬
"으아악"
그런데 루카스 오도넬은
단 한발도 맞지 않았다.

루카스 오도넬
"엥?"
그 정도로 톰슨의 명중률은 엉망이었고
유효사거리도 50m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런데 마피아를 반하게 만든건
루카스 오도넬 뒤 벽에 박힌
딱 2초동안 퍼부은 70발의 총알 자국과
미친 연사속도였다.

마피아
"Wow"

루카스 오도넬
"ㄷㄷ"

"루카스 오도넬은 이 사건이후
겁을 먹었는지 밀주사업에서 물러나"
당시 톰슨의 가격은 한 정당 225달러,
현재로 3000달러였는데

같은 시기에 TV가 100달러, 자동차가
300달러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기관단총치고도 엄청나게 비싼
몸값을 자랑하던 총이었지만
마피아들은 가격에 상관없이
너도나도 이 총을 애용하였다.
게다가 디자인도 아주 멋졌다.

마피아들, 특히 시카고 마피아가
톰슨을 워낙 많이 사용해서
한때 톰슨의 별명은 톰슨의 엄청난
연사속도가 마치 타자기를
빠르게 연타하는 것처럼 들린다하여
'시카고 타자기'였다.

"타다다다다다ㅏㄷ다"
다시말해 마피아의 싸움 방식과
톰슨의 엄청난 연사력이 잘맞아
마피아들은 톰슨 기관단총을
아주 좋아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
사실 경찰로 위장한 마피아가
노스 사이드 갱들을 죽였고
그 배후에는 알 카포네가
숨어있던 것 이었다.
알 카포네
"후후"
사건의 충격은 굉장히 컸다.
공권력으로 위장한 일개 범죄 조직이
보란듯이 살인을 저지른 것이니
이런 일은 전에는 없던 상당히 도전적이면서
기만적인 악질 범죄 자체였다.
경찰
"이놈들이"
경찰은 곧바로 알 카포네를
지목하여 수사에 착수했지만
사건 당일에 카포네는 플로리다에 있는
개인 별장에 머물며
변호사와 함께 여기저기 열심히
전화를 돌려 알리바이를 만들었고
카포네의 연기가 얼마나 자연스러웠는지
시카고 신문들은
실제로 경찰이 갱을 사살하였다고
보도해버리는 바람에
경찰 총기와 시신에 묻은 화약 반응을
직접 비교해보기위해
경찰의 총기 창고가 수색당하는
일도 발생했다.
하지만 당연히 경찰 총기에는
아무런 화약 반응도 나오지 않았고
그렇게 심증은 가득한데 별다른
물증없이 수사는 종결되었다.
이 사건으로 타격을 입은 노스 사이드 갱은
크게 위축되었으며
시카고의 밤거리는 카포네가 지배함을
세상에 알리게 되었다.
이 사건은 '발렌타인데이 학살 사건'
이라고 불리며
아직도 미국 최악의 범죄 중
하나로 손꼽힌다.
여담으로 알 카포네와 마피아를
괴물로 만든 미국의 금주법은
도덕가치가 공공재에 개입될때
실패한 희대의 악법으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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