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피아

마피아 연대기 11 (마피아 제국의 마지막 밤+버려진 쿠바)

글사람. 2021. 7. 1.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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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명은 계속된다   

 

쿠바에서 혁명의 열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쿠바 정부군은 반군과

싸움에서 계속 패배하고

 

바티스타는 이렇다 할 대책없이

그저 라디오에 

 

아무 문제 없다고 국민들을

안심시키는 것이 전부였다.

 

바티스타의 무능에 쿠바의

고위층들은 자신들의 재산을

 

달러와 금괴로 바꾸기 시작하였으며

당장이라도 쿠바를 떠날 준비를 마쳤다.

 

랜스키 또한 이런 상황에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었지만

 

역사의 대세를 자신이 무슨 수로

막을 수 있겠는가.

 

그저 불안한 뉴스가 들리면 관광객들이

그것을 기억에서 잊을 만큼

 

화려한 스트립쇼와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것이 전부였다.

 

랜스키에게 희망이 있다면

이정도로 불안한 시국임에도

 

호텔과 카지노는 늘 사람들로 북적거리며

돈을 쓸어담고 있다는 것이었다.

 

마이어 랜스키

"..."

 

하지만 랜스키의 비상한 머리는

일이 잘못되었음을 크게 직감하고있었다.

 

그렇게 불안한 나날을 지나던 중

나쁜 뉴스가 들려왔다.

 

미국의 라스베이거스 도박 위원회에서

쿠바 카지노를 운영하는 사업자는

 

라스베이거스에서 도박 사업을 할 수

없도록 규칙을 만든 것이다.

 

라스베이거스 도박 위원회

"쿠바에 대규모 카지노가 들어선 후

라스베이거스로 오는 손님이 반토막남"

 

라스베이거스 도박 위원회

"아니 상도덕이 있지 우린

뭐 먹고 살라는 거임"

 

라스베이거스 도박 위원회

"앞으로 쿠바 카지노 사업자는

라스베거스에서 사업할 수 없음!"

 

라스베이거스 도박 위원회

"라스베이거스에 남을 지 쿠바로

떠날지 알아서 선택하셈"

 

라스베이거스는 전무후무한

세계 최대 도박의 도시이기에

라스베이거스 전경

 

이곳을 접고 쿠바라는 신흥 사업을 

벌이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

 

게다가 쿠바에서 들려오는 불안한 혁명은

투자자들의 마음을 흔들기 충분했으니

혁명을 이끄는 체 게바라와 카스트로

 

조금씩 쿠바에서 카지노 사업을 

접는 사람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사업 내부에서도 분열이 발생하자 

랜스키의 고민은 더 깊어졌다.

 

그리고 1958년 3월, 미국은 바티스타

정권에 대한 무기 수출을 금지하였다.

 

바티스타 정권에 대한 

명백한 사형선고였다.

 

 

   제국이 흔들린다   

 

미국은 무능한 바티스타에 대한

무기 수출을 금지함으로

 

쿠바에서 일어나는 사태를

아예 관여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미국

"바티스타는 친미 성향이라

아깝긴하지만"

 

미국

"더 이상의 지원은 무의미하다"

 

다시 말해 바티스타 정권은 무기가 있어도

반군과 싸워 패배하는데

 

이제 그 무기까지 없어진 격이라

사실상 끝난 게임이었다.

 

게다가 1958년 6월에는 쿠바 반군이

미국인들을 납치하였지만

 

인질들을 잘 먹이고 보살펴주면서

혁명의 필요성을 설명해주고 풀어주었다.

 

쿠바 반군

"우리가 혁명을 한 것은 권력욕이 아니라

피폐한 민중을 구원하기위함임"

 

쿠바 반군

"혁명이 끝나도 쿠바는 안정될거고

지금보다 더 잘살게 만들 것임"

 

미국인 인질들

"오"

 

쿠바 반군에게 친절한 보답을 받은

인질들이 미국으로 귀국하자

 

당연히 미국의 언론사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해줄 수 밖에 없었고

 

미국 언론

"쿠바 반군은 어떻습니까?"

 

미국인 인질들

"친절한 사람들입니다"

 

미국의 여론도 쿠바 반군과 혁명에 대해서

우호적으로 변하였다.

 

이 말은 곧 바티스타 정권의

고립을 의미했다.

 

7월이 되자 쿠바의 정부군이 반군에게

대량 투항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카스트로는 이들을 고향에

돌려보내려했으나

 

상당수가 쿠바 혁명을 위해 스스로

반군에 가담하는 등

 

역사의 대세가 누구의 편인지

확실하게 정해졌다.

 

반군은 이제 더 이상 반군이 아닌

혁명군이 되었으며

쿠바 혁명군

 

쿠바의 수도 하바나 근교까지

진격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 해 12월, 크리스마스와

연말 시즌이 겹친 가장 바쁘고 성대한 날에

 

랜스키의 호텔은

텅 비기 시작하였다.

 

 

   마지막 밤   

 

1958년 12월 17일, 대통령 궁 앞에

한 검은 차량이 들어섰다.

 

이들의 모습을 누군가 보면

안되는 것처럼

 

입구에서 통과까지 마치 약속된 듯

빠르게 넘어갔으며

 

차량에서 내린 이들은 긴장한지 다급하게

빠른 걸음으로 궁 안으로 들어가 사라졌다.

쿠바 대통령 궁

 

대통령 궁을 들어간 이는 쿠바 주재

미국 대사 '얼 E. T. 스미스' 였다.

 

그리고 이 날 바티스타를 만나 은밀한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었다.

 

바티스타의 퇴진과

망명에 관한 문제였다.

 

얼 E. T. 스미스(미국 대사)

"지금 쿠바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습니다"

 

얼 E. T. 스미스(미국 대사)

"우리는 향후 사태에 관해 대통령님의

신변을 최우선으로 보호할 것입니다"

 

풀헨시오 바티스타

"나보고 뭘 어쩌라는 말인가"

 

얼 E. T. 스미스(미국 대사)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사퇴하십시오"

 

얼 E. T. 스미스

"그리고 미국으로 망명하십시오

그것이 유일한 길입니다"

 

풀헨시오 바티스타

"..."

 

바티스타는 부정하였지만 쿠바의

앞날은 불투명을 넘어 어두웠다.

 

그렇게 믿었던 미국마저 바티스타에게

사퇴를 종용할 정도로

 

바티스타의 정권 수명은 극한으로

몰려있음에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바티스타는 늘 반군과 싸워

격퇴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재산을 처분하고 가족들의

비자를 받으며 쿠바를 떠날 준비를 하였다.

 

물론 바티스타의 친구 마이어 랜스키와

마피아들에게는

 

쿠바를 떠날 것이라고 절대 말하지도

내색하지도 않았다.

 

화려한 네온사인과 불빛으로 가득했던

하바나의 밤거리는

 

이제 너무 위험해서 외출도 제대로

못하는 도시가 되었다.

 

늘 예약으로 꽉 차 있었던 랜스키의 호텔과

카지노는 점점 비어갔으며

 

쿠바 고위층들은 이제 쿠바를

탈출하기 시작하였다.

 

1958년 12월 31일 마지막 밤,

주춤했던 랜스키의 호텔과 카지노가

 

다시 활기를 되찾아 오랜만에

모든 호텔의 예약이 완료되었다.

 

최고급 리베라 호텔과 나이트 클럽에서는

새해를 기다리는 카운트다운 새면서

리베라 호텔

 

온통 축배와 건배를 들었고 파티와

환락에 물들어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그날 밤 9시에 랜스키도 

비밀 회의를 위해 그곳으로 출발했다.

 

회의의 안건은 단연 쿠바 혁명이 성공하면

어떻게 대처할지에 관한 얘기였다.

 

약간의 축배를 들고 회의로 머리를 앓던

시간이 흘러 1959년 1월 1일 새해가 밝았다.

 

새해를 장식하는 폭죽과 함께 랜스키는

새해가 밝든 말든 아무 상관없이

 

차라리 모든 것을 잊고 이번 해는

부디 잘되기를 기도할 뿐이었다.

 

파티가 절정이던 새벽 1시 30분,

 

랜스키의 측근이 심각한 표정으로 

다급히 랜스키의 귀를 빌렸다.

 

바티스타와 가족들이 비행기로

하바나를 탈출했다는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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