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피아

마피아 연대기 9 (마피아와 쿠바+라스베가스 암살 사건)

글사람. 2021. 6. 3.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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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회의 땅 쿠바   

 

1946년 나폴리의 항구,


쿠바로 향하는 한 화물선에
멋진 코트를 입은 남자가 승선하였다.

그 남자는 얼핏 설레보였지만
모자를 깊게 눌러쓴채 초조해보였고

마치 누군가에게 쫓기듯 불안한 기색을
숨길 수 없었다.

그 남자의 이름은 찰스 루치아노.


불과 7개월 전 미국에서 추방되는 조건으로
석방된 바로 그 마피아 보스 루치아노였다.

루치아노는 자신을 쫓는 미행을
따돌리기 위해

카라카스, 멕시코 시티를 거쳐
며칠만에 쿠바 하바나에 도착하였다.


루치아노는 긴 여정에 몸이 아주 피곤했지만
여독을 풀새도 없이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서둘러
짐을 챙겨 약속된 장소로 찾아갔다.

그곳에서 루치아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그의 충실한 파트너이자 마피아 최고 브레인,

루치아노와 가장 가까운 친구면서
가장 신뢰하는 동료인

마이어 랜스키였다.


랜스키는 일찍부터 쿠바에 발을
들이고 있었다.

미국에서 뉴욕 마피아의 기세가
한풀 꺾인 지금 이 시점에서

쿠바야말로 새로운 사업장이자
범죄 조직의 신세계라며


마피아 제국을 건설할 수도로 삼기
충분하다고 가능성을 높이 예견한 것이었다.

루치아노와 랜스키는 그동안 쌓인 말이 너무나
많았지만 습관처럼 일 얘기부터 나누기시작했다.

그리고 랜스키의 쿠바 진출

계획을 들은 루치아노는

늘 그렇듯 랜스키의 구상을 적극

지지해주며 계획을 승인하였다.

둘의 이야기 끝난지 얼마 지나지않은 12월,
쿠바 하바나의 나치오날 호텔로

미국의 거물급 마피아 20명이
속속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카리브 마피아 제국   

 

미국 마피아의 악명높은 거물들이
호텔로 모두 모여들자

루치아노를 비롯한 마피아 무리들은
회의를 시작하였다.


회의의 화두는 간단했다.

마피아의 신사업과 랜스키의
쿠바 카지노 사업 계획이었다.

 

마이어 랜스키
"우리는 2차 세계대전동안 미국의
언더월드 작전에 협력하며 연합하였지만"

 

마이어 랜스키
"전쟁이 끝난 지금 우리는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마이어 랜스키
"심지어 보스 루치아노가 강제 추방되고
미국 정부가 우리를 면밀히 감시하고있어서"

 

마이어 랜스키
"미국 사업을 유지하는 것조차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있습니다"

 

마피아 보스
"그건 맞지"

 

마이어 랜스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발판을 찾아야하는데"

 

마이어 랜스키
"그렇게 선택한 곳이 바로 쿠바입니다"

 

마이어 랜스키
"쿠바는 미국과 가까워 미국 사업과
쿠바 사업을 동시에 관리하기 쉽고"

 

마이어 랜스키
"전쟁으로 폐허가된 유럽과 비교해
사업하기엔 더 안성맞춤입니다"

 

마피아 보스
"오오"

 

마이어 랜스키
"또한 쿠바의 카지노 사업을 거점으로 삼아
훗날에는 카리브해 인근 국가로 진출하여"

 

마이어 랜스키
"거대한 카지노 사업을 구축해
마피아의 자금줄을 확보해야합니다"


쿠바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국가로
식민지배를 오래 받아아온 역사 탓에

쿠바 국기


역사적으로도 백인들의 비중이 높아
서구 문화에 큰 이질감이 없었으며
(1900년대 기준 인구 75% 백인)

쿠바 대성당 광장-유럽 바로크 양식이 돋보인다


남미의 여러 식민 국가들의 전형적인
플랜테이션의 착취 지배 구조가 아닌

쿠바는 관료제가 들어선 정상적인 인프라가
오래 전부터 구축되어있었다.

 

"스페인은 쿠바를 단순한 식민지가 아닌"

 

"멀리 떨어진 본토 취급해주며
인프라 구축에 꽤 공을 들였지"

독립 이후에도 서구 자본을 받아들이고
많은 개발을 이룩하여

1929년 기준으로 쿠바의 국민 소득은
미국의 41%정도를 따라잡았으며

1929년 쿠바 하바나


중남미에서 독립한 국가들 중에 비교해
5위에 머무를정도로 꽤 잘살았다.

1958년 쿠바 하바나


게다가 중남미 독립전쟁으로 도망쳐온
고학력 고위층 백인들이 쿠바에 정착하여서

정치적 사회적으로 빠르게 안정을 찾으며
경제 개발에 힘을 쏟을 수 있었고

도박장, 경마장, 호텔같은
관광지가 마구 생겨나고


쿠바 럼, 쿠바 시가는
미국에서도 인기만점이었다.

쿠바 럼, 쿠바 시가


랜스키의 거대한 계획은 충분히

실현가능했기에 더욱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마피아 보스 모두 이 계획에 찬성하여
이야기가 깊어지고 있는 도중

한가지 문제가 생겼다.

마피아는 이미 '벅시 시걸'이 운영하는
라스베가스 카지노 사업에 투자한 것이었다.

카지노 도시 라스베가스

 

벅시 시걸
"음 호텔 로비 전면을 유리로 바꿔야함"

 

벅시 시걸
"호텔 수영장에서 카지노가 보이고 카지노에서
수영장이 보이면 손님이 더 많아질것임"

 

벅시 시걸
"그러려면 재공사가 필요한데
돈이 더 필요함"

당초 200만 달러에 플라밍고 카지노 호텔을
짓는 것을 약속받고 시걸에게 투자하였지만

재공사가 필요하다는 벅시 시걸의 생각에 따라
마피아는 400만 달러를 추가로 투자하였다.


그런데 라스베가스 카지노 사업이

생각보다 수익이 형편없었다.

게다가 벅시 시걸이 카지노 호텔 수익을 숨기고
돈을 빼돌리고 있는 것도 모자라

마피아가 투자한 600만 달러 중 200만 달러가
스위스 비밀계좌에 숨겨진 것이 포착되자

 

마피아
"약속한 수익금은?"

 

벅시 시걸
"돈 없음"

더 이상 벅시 시걸을 살려둘
이유가 없었다.

참고로 벅시 시걸의 본명은
'벤자민 시걸'인데

하는 짓이 하도 해충같아서 붙은

별명이 '벅시(Bugsy)'이다.

 

마이어 랜스키
"카지노 사업은 어차피 쿠바로 옮길테니"

 

마이어 랜스키
"우리 돈을 갉아먹는 시걸을

죽여야합니다"

그렇게 라스베가스 카지노 사업을 정리할겸
교활한 시걸을 제거하기로 회의에서 승인났고

1947년 6월 20일, 시걸은 캘리포니아 자신의

저택에서 두개골을 저격당해 살해되었다.

눈에서 피가 나는건 총알의 압력으로 안구가 날아갔기때문

 

"이때 마피아 역사 최초로 저격총을 사용해
원거리에서 암살을 하였는데"

 

"그 이유는 시걸이 총을 꽤 잘 쏘는
명사수라서 암살에 실패할까봐여서야"

회의가 끝나고 몇달 후인 1947년 3월, 미국은
루치아노가 쿠바에 거주 중인 것을 알아챘다.

 

미국
"이넘들 무슨 꿍꿍이지?"

루치아노가 대단히 의심스러웠던 미국은
쿠바 정부에 압력을 가해

루치아노를 당장 내쫓을 것을
요구하였고

 

미국
"왜 지상 최악의 범죄자를 들여와서
불안하게 만드는 거임?"

 

미국
"당장 내쫓아"

 

쿠바
"넵ㅜㅜ"

루치아노는 이탈리아행 화물선을 타고
쿠바 하바나를 떠나야했다.

루치아노가 떠나고 나자 이제 하바나에는
랜스키만 남아 남은 사업을 진행해야했다.

랜스키 홀로는 분명 감당하기 어려운
큰 사업일수 있었다.

하지만 랜스키는 이미 자신의 뒤를 봐줄
누군가와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독재와 범죄   

 

풀헨시오 바티스타(Fulgencio Batista).


1933년 그는 군대 부사관 상사 신분으로
쿠바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다.

 

"고작 부사관 상사가?"

 

"역사상 쿠데타 중 가장 낮은 계급!"

7년간 자신이 지명하는 사람에게 대통령을
수행하게하며 권력을 위임하였지만

 

1940년에는 본인이 본인을 지명하여 스스로
대통령이 되어 쿠바의 1인자가 되었다.

그는 책을 아주 좋아했고 연설을 잘해
군 내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문맹 퇴치운동을 일으켜 쿠바 국민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였고


2차 세계대전 중에는 미국 편에서 싸우며
미국의 신임까지 얻는 스타였다.

그런 그가 1944년에는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여생을 보내고 있었다.


대통령에서 물러난 그는 플로리다로 이주해
마이애미와 뉴욕을 오가며

한가롭게 지내고 있었고
새로운 친구들도 사귀게되었다.

새 친구는 바로 마피아와

마이어 랜스키였다.


랜스키는 쿠바에 아주 관심이 많았고
바티스타라는 거물을 잡은건 행운이었다.

둘의 관계는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
점점 더 가까운 사이가 되는 것을 의미했다.

 

마이어 랜스키
"요즘 잘 지내십니까?"

 

풀헨시오 바티스타
"사람 사는게 다 똑같죠 뭐
일반인으로 산다는게.."

 

마이어 랜스키
"저번에 얘기한 카지노 사업
생각해보셨습니까?"

 

풀헨시오 바티스타
"아주 좋습니다 그런데

제가 뭘 하면 될지...?"

 

마이어 랜스키
"다시 대통령이 되는건 어떠십니까?"

 

풀헨시오 바티스타
"!!"

랜스키는 바티스타에게 쿠바의 정권을
다시 장악하라고 부추겼다.

그렇게만 된다면 쿠바의 최고 권력가가
자신의 사업 파트너가 될테니 말이다.


1948년, 바티스타는 랜스키의 말을 듣고 새로운
욕심이 생겼는지 다시 정계에 진출하였다.

그리고 대통령 선거 몇달 전인 1951년 말에
선거 여론조사를 실시하였는데

웬걸. 여론조사 결과 자신은 고작
3위에만 머물러있는 것이 아닌가.

정상적인 선거로는 절대 대통령이
될 수 없음을 알아차린 바티스타는

1952년 3월, 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스스로 대통령이 되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바티스타는 정권 불안이
관광 수입 감소로 이어질까 두려워하여

쿠바 카지노 산업을 친구 랜스키가
맡아주기를 청하였다.

 

랜스키는 쿠바의 카지노가 사기 도박으로

운영한다는 관광객들의 신고를 받고

(실제로 미국인 변호사가 사기 도박이라고 소송함)

 

쿠바의 도박장에는 조폭이나 갱,

타짜, 사기 도박사 등

 

사기와 관련된 모든 인물들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였다.

 

그리고 카지노와 더불어 고급 클럽과

매춘 업장도 차려놓아

 

관광객들이 한번 발을 들이면 어떻게든

돈을 쓸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이렇게 마피아는 계획적으로 카지노 사업을
보란듯이 성공적으로 개시하였고

 

이번에도 이 모든 일의 중심에는
랜스키가 있었다.


하지만 랜스키의

바람과는 다르게

 

쿠바의 미래는 바람앞의 촛불처럼

매우 위태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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