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왜 필요한가 (과학사회에서의 종교+종교는 무엇인가)
자연을 섬기다
동아프리가 대평원에서 침팬지가 먹이를
찾아 걷기 시작하며 인류가 탄생했다.
'투마이'를 시작으로
'호모 사피엔스'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끊임없이 발전했고 나름의
생존전략을 추구하며
아프리카를 넘어 세계 곳곳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300만년에 걸쳐 인류가
발전해와도 인류는 너무나 나약했다.
당장 먹이를 위해 자신보다 훨씬 크고
훨씬 강력한 동물과 싸워야했고
비, 바람, 천둥과 번개같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자신을 위협하기도 하였다.
"어제는 옆동굴 아저씨가 잡아 먹히고"
"오늘은 아랫동굴 친구가 물에 휩쓸렸는데"
"도대체 이 무시무시한
힘은 어디서 나오는걸까?"
아무것도 없었던 원시의 인류가 자연에
대항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선대가 알려준 생존의 전술, 구전으로 전해지는
유용한 경험이 유일한 무기였지만
여전히 화산 폭발, 번개, 비, 바람 등의 자연활동은
인간의 이해를 넘어가는 범주였고
야생동물의 습격이나 외적인 공격도 한정된
정보만으로 맞서야하는 두려움이었다.
이러한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토테미즘,
애니미즘, 샤머니즘의 형태로
자연을 이해하여 미래를 대비하고자 하였고
인류의 경험을 접목시켜 필요한 지식을 더하니
인간에게 삶과 죽음을 주던 자연물이
숭배의 대상이 되어 아주 원초적인 종교가 되었다.
원시 종교 유물이나 그림이 동물 또는
자연물 형상을 하거나
아리송한 사람의 형태로 보이는 이유도
같이 이유에서이다.
어떻게 종교가 되었나
종교의 시작에 대한 일반적인 학계의 가설은
인구가 늘고 공동체가 커지며 농경이 시작되자
수 많은 사회 구성원들을 다스리고 규범을 세우기
위해 종교가 탄생했다고 보았으나
터키에서 무려 12000년 전의 종교 시설물
'괴베클리 테페'가 발견되면서 가설이 깨졌다.
(최초의 농경은 기원전 9500년경에 시작되었다.)
즉, 문명이 시작되기 전부터 종교는 이미 어느정도
인식이 가능한 행위였고 영향력이 있었다는 뜻인데
인류가 발전하여 문명이 발생하자 종교의
역할은 비교할 수 없을만큼 더 중요해졌다.
스톤헨지, 모아이 석상, 피라미드 등과 같은
종교 시설물은
생존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으면서
엄청난 노동력과 비용을 필요로 하는데
다른 것을 포기하고 이만한 비용을 들일 가치,
이를 위해 많은 사람들을 끌어모아야 하는 명분,
본업을 포기하고 노동력을 제공할만큼 정당한
당위성 등이 모두 맞아 떨어져야 함에도
종교라는 이유 하나로 당시 사회에서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게다가 자연현상을 설명할 충분한 과학적 지식과
연구할만한 기반이 부족하던 시절,
근대 이전만해도 세계를 설명할 수있는 방법은
종교만이 절대적인 답이었다.
이집트인
"오래 전 혼돈의 바다에서 태양신
라께서 태어나"
이집트인
"눈물로 사람을 만들고 라의 자손들이
세상의 물질을 만들어낸 것임"
인도인
"태초의 원시 바다에서 황금알을 깨고
태어난 프라자파티께서"
인도인
"첫번째 단어를 말씀하니 그것이 지구가
되고 두번째 단어가 계절과 하늘이 된것임"
유대인
"태초에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시니
세상이 만들어졌고"
유대인
"6일째 되는 날 아담과 하와를 빚어
사람을 창조한 후 7일째 쉬셨더라"
이렇게 종교마다 묘사가 전부 다르고
세계관도, 신의 이름도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초월적 존재가 세계를 만들고 인간은 거기에
부속된 듯한 묘사가 주를 이룬다.
증거도 없고, 증명도 할 수 없는 설명이지만
각각의 종교가 내세우는 창조론은
종교가 발생한 지역의 고유 문화와 그 공동체
가치관이 반영되어 있기때문에
종교를 공유하는 공동체의 상황에 맞게
선택하면 그만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절대적인 것같던 종교도 시대의
흐름과 상황에 따라 유동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카스트제도를 비롯하여 교리가 매우
엄격하기로 소문난 브라만교도
브라만교를 믿는 아리아인들이 인도를
정복하고 토착민들을 다스리기 위해
토착 종교와 섞어 새로운 종교로 만든 것이
오늘 날 힌두교가 되었고
유일신의 대명사인 유대교도 가나안 땅
(오늘날 팔레스타인)에 들어서자
몰렉 신, 바알 신과 같은 가나안 토착 신과
결합하거나 오히려 도태되는 등
결국 종교도 환경에 따라 인간의
필요에 맞게 개조되곤 하였다.
"같은 종교라도 교리 해석에 따라
파가 갈리는 오늘날 모습과 같지"
또한 종교가 보편화된 사회는 양심, 도덕, 박애
등의 심리적 장치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
고대 로마인들은 빈민에 대해 매우 인색하여
빈민구제가 빈민을 타락시킨다고 보았다.
로마인
"게을러서 빈민이 된걸 왜 구제해야함?"
물론 빈민을 대상으로 무료배급이나
구제 정책이 존재했지만
어디까지나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실행되었고
개인적인 구제활동도 개인의 부를 과시함 또는
명성을 쌓기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카이사르
"내가 루비콘강을 건너 정권을 장악했을때"
카이사르
"무료 배급을 실시한 이유가 과연 그 사람들이
불쌍해서 였을까?"
루비콘강과 카이사르
루비콘강과 카이사르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는
카이사르, 품페이우스, 크라수스
총 3명이 권력을 분권하는
삼두 정치가 시작되었지만

크라수스가 파르티아 원정 중에
사망하게되자

크라수스
"으악"
권력은 카이사르와 품페이우스
단 두사람의 쟁탈전으로 변했다.
당시 로마는 오늘날 의회와 같은
원로원의 지배를 받는 공화정이었는데
카이사르는 로마 체제를 아예
바꿔버리려는 개혁의지를 보였고

카이사르
"썩어빠진 원로원"
품페이우스는 현 로마를 유지하려는
중도의 입장을 보였다.

품페이우스
"썩어도 준치"
그렇기때문에 이 둘은 서로 친했지만
결코 한 배를 탈수 없는 운명이었다.
그리고 품페이우스는 원로원의
편에 붙어 카이사르와 완전히 등졌고
원로원은 이에 크게 고무되어
오늘날 프랑스에 해당되는
갈리아 총독으로 부임해 나가있던
카이사르를 로마로 소환했다.

"갈리아 총독 카이사르는 속히 로마로
돌아오라는 명령을 받으시오"
로마에는 전통이 있는데 바로
로마로 들어오기전 거쳐야하는
루비콘강을 건널때는 군대를 물리고
무장을 해제한채

단신으로 로마로 입성하여 아무런
위협이 없음을 보여야했다.
그리고 원로원은 정치적 적 카이사르를
단신으로 로마로 불러들이고 있는 것이었다.

카이사르는 이미 알고있었다.
자신이 로마로 소환되는 의미와
그에따른 댓가를 말이다.
그리고 루비콘강 바로 앞까지 진군해
홀로 치열한 고민에 휩싸이는데
군대를 물리고 단신으로 로마로
입성하면 자신은 죽게 될 것이었고

군대와 함께 로마로 입성하면
자신은 반역자가 될 것이었다.

그리고 고심끝에 카이사르는 굳게
결심한듯 이렇게 말했다.

카이사르
"주사위는 던져졌다!"
카이사르는 곧 군대를 이끌고 로마로
입성하여 권력을 잡았고

원로원은 완전히 찌그러진채
품페이우스는 이집트로 도망쳤다.
루비콘 강을 건넌다는 의미는 중대한
사안 앞에 결정의 순간을 말하며
주사위는 던져졌다 라는 말의
유래도 바로 여기서 유래된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가 전파된 로마는 이전과는 다른
성격의 빈민 구제가 실시되었다.
빈민 구제가 복지의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어 장기적인 복지 시스템으로 자리잡았고
근 천년간 종교 활동은 복지 정책에 상당한
기여를 하게되었다.
로마인
"예수께서 이웃을 사랑하라 하셨음"
이를 통해 종교는 선한 이미지를 만들고 국가는
사회안정을 통한 정권 안정을 꾀할 수 있었으니
통치자 입장에서는 종교를 떠먹여 키우며
예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대게 종교는 고도의 정치적인 전략이 아닌
말그대로 인류애를 실천하기 위한 행위 즉,
박애, 평화, 사랑, 도덕과 같은 가치를 세우고
초월적 성품을 기르는 행위라고 정의된다.
곤경에 처한 사람을 보면 가엾게 여기는 마음,
타인을 이해하고 평화를 유지하라는 가르침,
죄를 지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는 인식,
미래에 대한 두려움, 죽음 후에 펼쳐질 세계 등
인간에게 작용하는 심리와 두려움을 종교의 힘으로
해소하고자 하는 것은 여전히 현대까지 전해지며
전세계 인구 84%가 종교를 믿는 세상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과학이 이토록 발전한 사회에서 종교의 영향력이
줄지 않고 오히려 늘고있다.
과학은 종교적인 설명을 깨는 송곳같은
존재 아니었던가?
어떤 이유로 종교가 살아남았고 미래에도
살아남는다는 전망이 있는 것일까?
과학 사회에서의 종교
인류는 과학을 기반으로 자연과 세계를
관찰하며 엄청난 지식을 축적하고 있지만
전 세계 인구 중 4대 종교가 차지하는 인구만
50억명에 육박하는 종교 행성에 살고있다.
이것도 한 때 반 종교를 외쳤던 공산권이
세계를 양분했는데도 이 정도 수치가 나온 것이다.
마오쩌둥
"종교는 인민의 아편!"
사실 종교라는 명목으로 인간은 수많은
과오를 저질러왔고
종교가 약자가 아닌 지배자의 편에서 권력을
키워주는 것을 목격하기도했다.
가장 도덕적이어야 하는 종교의 밑바닥을 경험한
사람들은 종교를 불신하며 뒤돌아서고 있는데,
현대 문명을 이끄는 과학이 종교보다 논리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무신론에 일조하고 있다.
실제로 과학 사회와 먼 후진국일수록 종교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과학 사회와 가까운 선진국일수록 종교의
영향이 적다는 연구가 있다.
후진국은 선진국에 비해 교육의 정도나 복지,
사회 인프라가 매우 열악하고 소득 수준이 낮아
부족 단위의 종교적 가르침이 사회 안정을
이루는데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인데,
그렇다면 선진국들은 비종교적인가?
꼭 그렇지만도 않다.
선진국의 대표 주자 미국의 예를 보면,
무신론자 비율은 점점 느는데 반해 종교인은
감소하는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주목해 볼 점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종교인 비율이 현상 유지되는 곳이 있다.
바로 미국 남동부의 '바이블 벨트'라 불리는
텍사스, 버지니아, 오클라호마 등의 지역이다.
청교도 이민자들의 최초의 터전이라 옛 부터 기독교
근본주의가 강하고 백인 보수주의가 팽배한데
이 지역은 허리케인과 토네이도같은 천재지변이
잦고 남부 특유의 대가족 문화가 남아있어서
종교의 힘에 의지하고자하는 심리가 더욱
강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오히려 기성 종교들이 휘청이는 사이
그 틈에 사이비 종교가 우후죽순 생겨
거짓 종교에 빠지고 사회문제를 일으키는 현상은
후진국보다는 선진국이 훨씬 많다.
존스타운 사건
존스타운 사건
제임스 워런 존스는 사회주의와
기독교에 푹 빠진 열혈 청년이었다.

그는 사회정의를 내세우며 인종차별 반대,
평등의 자유, 빈민 구제를 내세웠고
이를 바탕으로 파격적인 봉사를
이어나가며 명성을 쌓았다.

"존스가 활동했던 시기가
1950년대인걸 감안하면"

"그의 주장은 당시에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엄청난 주장이었지"
그는 이러한 명성을 바탕으로
신학을 공부하지 않았음에도
목사 안수를 받으며 종교 지도자로
자격을 얻게되었고

점점 사이비 교주와 같은 행동을
일삼으며 본색을 드러냈다.
특히 그가 말을 유창하게 잘하고
카리스마있는 행보가
사람들이 그에게 더욱 이끌렸던
매력으로 작용했다고한다.

존스는 '인민 사원 완전 복음
그리스도교회'라는 조직을 만들고
1974년, 남아메리카 가이아나의
땅을 사들여
그곳에 대규모의 마을을 건설하여
신도들을 이주하게하였다.


제임스 워런 존스
"자본주의와 기독교와 같은 악이
존재하지 않는"

제임스 워런 존스
"진정한 구원의 성지이자 천국 건설!"
그런데 신도들은 그런 존스의 행보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들의 진정한 구원자라며
모든 요구에 순순히 따랐다.
그가 주장했던 인종차별 반대와
평등의 자유, 빈민구제 등의 가치는
당시에 인종때문에 차별받고 평등하지도
않으면서 빈민으로 살아가던 사람들,
특히 흑인들이 그를 너무나 지지하게
만들었던 슬픈 현실이 있었다.

존스는 그곳에서 교주뿐 아니라
마치 왕처럼 군림했다.
신도들이 농작물을 할당량만큼
채우지 못하면
심한 정신적 학대와 구타를 동반했고
가족들끼리도 서로를 의심하게 했으며
마을 밖으로 탈출하지 못하도록
무장 경비병을 세워 감시했다.

그는 마을 밖 정글에는 온통 독사와
원주민이 도사리고있다며 겁주었고
행여나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반대되는 의견이나 행동이보이면
간부들에게 보고를 받아
당장 조치를 취하는 등
존스 타운 내의 모든 일에는
반드시 존스의 지배가 존재했다.

그러던 1978년 11월 17일, 존스 타운의
진상을 보기위해 미국에서 조사단이 왔다.
존스는 마치 신도들이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신도들에게 거짓말을 강요하며
행동을 연기하도록 하였고
조사단은 실제로 존스 타운이 정말
행복하게 지낸다고 속았다.
그러나 신도 한명이 조사단에게
도와달라는 메모를 몰래 건네며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었고 존스는
표정이 갑자기 바뀌더니
쪽지의 내용은 거짓이니 조사단에게
당장 나가라고 요구하였다.

제임스 워런 존스
"당장 나가시오!"
그제야 조사단은 존스 타운 사람들의
얼굴에 드리워진
심각한 불안함과 보복 협박을 보았고
서둘러 짐을 챙겨 빠져나가려는 도중
존스의 지령을 받은 신도의 습격을
받아 5명이 사망하는 등 사태가 심각해졌다.
그리고 오후 5시 30분, 존스가
신도들앞에 나타나 연설을 하였다.

제임스 워런 존스
"곧 미국의 대규모 공격이 있을 것이다!"

제임스 워런 존스
"우리가 지금 죽지 않으면 그들이
낙하산을 타고 어린이도 고문할 것이다!"
존스는 신도들에게 청산가리를 탄
에이드를 마시게하며
음독자살을 명령하였고 신도들은
그의 명령에따라 모두 자살하였다.

그렇게 912명이 오직 존스의
명령을 위해 죽었다.
사망자의 1/3인 276명은 16세 이하
어린이였으며
부모가 자식에게 청산가리 에이드를
마시게 하고 부모가 따라 죽었다.
혈흔이나 유혈이 나타나는
잔인한 사진은 아니지만
1000여 구의 시체가 즐비한
광경은 가히 충격적이다.

주동자인 존스는 권총으로 머리를
쏘아 자살하였다.
(타살일 가능성도 있다)
아직까지도 사이비 종교와 신념에 관한
최악의 사건으로 기록되어있다.
이러한 현상을 종합해 볼때 후진국 사람들이
비 과학적이라 종교에 빠진다거나,
선진국 사람들이 과학적이라
종교에 빠지지 않는 것이 아니고
그저 주어진 환경이 얼마나
안정적이고
종교 외에 다른 수단이 있는지가
중요함을 알 수 있다.
그래도 종교는 이어진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종교로 설명되던 자연, 천문,
인간에 대한 정의는 이미 과학에게 권위가 넘어갔다.
지구의 나이가 46억살 이라던가, 생물의 진화같이
이미 관측 가능한 과학적 발견이 이뤄지고
종교의 설명으로는 더 이상 과학을 따라잡지 못하고
유사 과학으로 취급받기 십상이지만
그럼에도 종교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인간을 살인하면 안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종존 보존을 위한 효율이나 생물학적인
이유로 살인을 금한다면
왜 종족 보존을 위한 성폭행은 허용되지 않으며
왜 똑같이 살인을 저질러도
한쪽은 살인마, 다른 한쪽은 전쟁 영웅이 되어
다른 취급을 받는 것 일까?
답은 간단하다.
이미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받아들이는
전제이기 때문이다.
사실 종교와 도덕을 제외하고는 살인을 하면
안되는 이유를 딱히 설명할 방법이 없다.
종족 보존을 위해 살인을 금한다면 거꾸로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 살인을 할 수도있고
살인을 하기 위한 이유를 갖다 붙이면
한도 끝도 없이 합리화가 가능하다.
하지만 굳이 답을 찾지 않아도 이미
알고있는 도덕적 사실처럼
우리가 질문하지 않고도 받아들이는 많은
합의에는 이미 종교가 뿌리내려있다.
사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했다한들 존중, 배려,
박애, 사랑과 같은 인류애와 가치는
과학으로 건드릴 수도 없고 설명 할 수도 없는
성역에 가깝다.
그동안 아무리 인류가 인류애를 버린 채 많은
실수를 저지르고 끔찍한 사고를 일으켰어도
인류가 추구하는 가치가 적어도 도덕적이며
인류애 지향적이라면
종교는 그 선두에 남아 있을 것이다.
이것은 종교의 존재 이유인 동시에 과학이 종교를
부정하지 못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인간이 삶을 살아감에 있어 추구하는 목표는
생존, 돈, 명예가 전부는 아니다.
메슬로의 욕구 단계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하위에서 상위로 한 단계씩 올라가면서
욕구를 충족한다고 정의했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는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를 국가가 책임지기를 요구하다보니
자아 실현에 도달하기 까지 욕구 충족의
속도가 점점 가속화되고 있다.
때문에 스스로 나를 찾고 정의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이들도 많아지고
이러한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며 종교의
가르침이나 이상에 의존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저명한 물리학자 닐 타이슨은 정체성을 찾으려는
욕망은 과학과 종교 둘 다 같다고 말하였다.
닐 타이슨
"누군가가 태초의 비밀을 알아냈다면 그를
중심으로 강한 종교단체가 형성될 것이다."
닐 타이슨
"나는 어디로 가고있는가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닐 타이슨
"나는 어디서 왔는가도 못지 않게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한 종교가 없다할지라도 동서양을 떠나
남을 불쌍히 여기는 측은지심(惻隱之心),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수오지심(羞惡之心)과
같은 덕목들을 교육을 통해 습득하고
양심과 도덕을 지향하며 이를 어기면 벌을
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아직까지 지배적이다.
이는 대부분의 종교가 인식하는 가치와
절묘하게 들어맞는데
일반적 사회 인식과 종교가 추구하는 가치가
공통적이며 상호 의존적임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종교는 충분히 친 사회적이고
사회는 친 종교적인 성향을 보이는 것이다.
진화 심리학자 아라 노렌자얀은 종교가
친 사회적인지 도출하기위해
종교인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가상적인
상화을 두어 자원 배분 게임을 실시하였는데
이때, 종교인들은 은연중으로 또는 유의미하게
자원을 배푸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게임이 끝나고 자원을 베푼 종교인을 대상으로
그렇게 행동한 이유가 무엇인지 조사해보니
"그냥 은연중에 신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요."
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또다른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론을 얻을 수
있는데 초자연적인 실체에 대한 믿음과 공포는
개인이 이기적인 이익만을 추구하지 못하게
작동한다는 것 이다.
그래서 도덕성에 관해 종교인에게 거는
기대가 매우 큰 것이고
종교인의 타락은 일반인의 타락보다
더 엄격하게 경계받는 것이다.
스스로 종교적이지 않다고 생각하여도
'착하게 살것이다' 라는 전제가
이상하지 않은 사회이기 때문에 종교는
그 의식을 복돋아주는 존재로 계속 남을 것이다.
카인보다 아벨이 더 불쌍함은
어쩔 수 없지 않은가.